김보람 감독 인터뷰 영화 내 코가 석재

<내 코가 석재> 스틸 컷

 

<피의 연대기>(2018) 이후 단편영화 두 편을 연출했어요. 다큐멘터리와 창작극의 연출은 각각 다른 감각을 운용하게 될 것 같은데요. 단편영화들을 연출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영화를 배운 적이 없어서 영화를 만들 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어떠한 기준이 없어요. 단순하게, 어떤 장르나 이야기에 끌리면 그걸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 편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비슷한 편집 과정을 거치고요. 다른 감독님들이 어떻게 연출 하는지 모르고 본 적도 없어서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결정을 내리고, 취향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향하며 작업해요.

감독님의 세 작품 모두 일상에 밀착된 작은 소재에서 나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생리부터 <자매들의 밤>에서는 엄마와 이모, 이번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한 <내 코가 석재>는 만성비염 환자가 주인공이죠. 

내가 재미있어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피의 연대기>는 정말 ‘왜 나는 평생 생리대만 썼을까? 이 피는 언제까지 흘려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 역사와 시장을 공부하면서 무척 재미있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보다 혼자 자료조사를 할 때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밤이 새는 줄도 몰랐어요. <자매들의 밤>은 제가 지켜본 엄마과 이모들의 삶과 그들의 관계가 재미있어서 언젠가 꼭 이야기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내 코가 석재>는 제 인생 화두인 비염과 몇 년 전부터 흥미롭게 생각했던 ‘비대면 진료’, ‘신체 이식’과 같은 테마를 섞어서 만들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길어서 때론 지루하기도 하고 물리적, 경제적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재미가 아니면 끝까지 가기가 힘든 것 같아요.

<내 코가 석재>는 어떻게 만들게 된 영화인가요?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노멀을 소재로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이 있었어요. 전부터 관심 있는 주제로 시나리오를 써서 만들게 되었죠. 만성 비염을 앓는 주인공이 팬데믹 상황에 집에 갇히면서 비대면으로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에요.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나 단계는 언제에요? 

시나리오를 쓸 때도 재미있고, 촬영 현장도 재미있어요. 음악, 사운드 믹싱, 색보정 이런 작업을 할 때가 제일 신납니다. 저보다 재능 있는 스태프들의 에너지와 감각으로 영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정말 신기해요.

반대로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프리 프로덕션이 제일 힘들어요. 생각과 다른 게 많고, 예산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돈이 나가는 과정을 보는 스트레스도 크고요. 편집은 엄청나게 힘든 시간이에요. 그만큼 성취감도 있지만, 세 편의 영화를 편집하며 매번 겪었던 감정은 ‘망했다’였으니까요.

 

김보람 감독 인터뷰 영화 내 코가 석재

<내 코가 석재> 스틸 컷

 

내 결정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편인가요? 

주변에 물어보다가도 그냥 내 생각대로 하는 편이에요. 적어도 그렇게 하면 망하더라도 내 책임이니까요.

영화를 계속해서 구상하며 준비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고 그것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겠죠. 평소 어떤 루틴으로 삶을 꾸리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일을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나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엄청나게 많이 먹고 운동을 갑니다. 영미문학을 읽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자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순간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파트너와 함께 살며 끊임없이 (시나리오) 이야기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운동, 소설, 대화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김보라 감독과 윤가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작품이 알려지면서 미움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여성으로서 받는 칭찬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이것이 남성 감독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님 또한 여성 영화로 데뷔를 한 후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 말에 동감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작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피의 연대기> 때는 저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뭐가 됐든 외부로부터의 반응은 피하는 편이에요. <피의 연대기>를 만들고 나서 엄청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고, 영화 홍보를 위해 운영하던 SNS도 정리하고 인터넷을 최대한 멀리 하며 살았어요. 작품에 대한 반응이나 나 자신에 대한 평가 같은 것들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앞으로 돈을 많이 벌면 최대한 고립된 곳에서 창작만 하고 살고 싶어요.

 

김보람 감독 인터뷰 영화 내 코가 석재

<내 코가 석재> 스틸 컷

 

많은 창작자들이 새 작품을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막막하다고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작품을 만들게 하는 감독님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한 편의 영화가 마무리  되기도 전에 ‘아, 다음엔 뭘 만들어 먹고 살지?’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여태까지 영화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는데 지금 답변을 하면서도 이상한 생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마지막으로, 요즘 감독님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코미디를 쓰고 있는데, 어려워요.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데 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연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