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 하교 길 자전거 위에서 펄럭이는 그 애의 셔츠, 눈을 감고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는 어렸던 너와 나.영화 <남색 대문> (2002)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여름의 모든 것이 정석처럼 들어있다.

멍커로우 (계륜미)와 리위에전 (양우림) 둘도 없는 단짝 친구다. 위에전은 같은 학교 수영팀의 장시하오 (진백림)를 짝사랑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장시하오가 버린 물건을 모으거나 볼펜이 닳을 때까지 장시하오의 이름을 쓴다. 둘은 늦은 시간에 만나 장시하오가 밤마다 수영하는 수영장에 몰래 찾아가기도 하고 장시하오의 사진을 오리며 음악을 듣고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장시하오와 친해지는 것은 위에전이 아닌 위에전의 마음을 대신 전달하던 멍커로우다.

이렇게 보면 전형적인 로맨스 청춘영화와 궤를 같이 하는 듯하다. 그러나 멍커로우 입장에서 보면 이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멍커로우가 좋아하는 것은 장시하오가 아니다. 멍커로우가 기꺼이 사랑의 메신저가 되었던 것은 단 하나, 그 사랑이 위에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전의 머릿속이 장시하오로 가득 차 있을 때조차 멍커로우의 관심은 오직 위에전에게 있었고, 멍커로우가 위에전을 맘 편히 안을 수 있는 순간은 장시하오 가면을 쓰고 있을 때뿐이다.

멍커로우는 위에전의 사랑을 완성시켜주기 위해 장시하오와 위에전을 만나게 해주지만 장시하오의 마음은 이미 멍커로우를 향해 깊어진 상태다. 장시하오는 멍커로우가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혼란에 빠진 멍커로우를 위해 함께 정체성을 고민하며 자신의 마음 또한 키워나간다. 세 사람이 유일하게 속마음을 낙서하듯 말할 수 있었던 건 농구장의 하얀 벽뿐이다.

엇갈린 세 사람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사랑을 지켜주는 것을 선택한다. 열일곱이기에 가능했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미묘한 관계를 감독인 이치엔은 세밀화를 그리듯 섬세하게 잡아낸다. 이 영화를 위해 길거리에서 캐스팅 되었다는 계륜미는 맑은 얼굴과 짧은 머리카락 안의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멍커로우 그 자체가 되어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새카만 피부 톤에 고슴도치처럼 솟은 머리, 수줍을 때마다 보조개가 들어가는 진백림의 연기도 이 영화를 ‘클래식’이라 칭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완전하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뜨거웠던 여름,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우리들은 사랑을 하며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