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걸 의심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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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기 앞서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기 앞서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나혜석의 소설 <경희> 中

 

근대 여성의 문학을 모아 현대적으로 읽기 쉽게 해석되어 나온 <모던걸> (텍스트칼로리) 시리즈. 그 중 소설집 ‘의심의 소녀’에는 약 100년 전 소설가 백신애, 김명순, 강경애, 지하련 그리고 나혜석이 쓴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신여성으로서 주변에 느끼는 갑갑함을 표현한 ‘나의 어머니’, 사형 당한 오빠를 생각하다 미쳐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어둠’,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진 여성을 향한 당대의 시선을 알 수 있는 ‘가을’, 복잡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에 관한 ‘의심의 소녀’, 나혜석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경희’까지, 지금껏 조명되지 않았던 이들의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다. 각각 강한 흡인력으로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데 유교 사상을 향한 모래알을 씹는 듯한 불쾌감은 모든 소설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의 첫 소설 <경희>에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넘어 현재에도 곱씹을만한 사유가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일본 유학에서 잠시 돌아온 ‘경희’에게 동네의 아주머니들은 여자애가 그렇게 많이 배워서 어디에 쓰냐, 여자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이 많다는 등의 말을 한다. 속으로는 톡 쏘아 붙이지만 경희 역시 조선시대에서 나고 자란 여성으로서 그 말을 온전히 무시할 수가 없다. 가치 있는 삶을 향한 경희의 갈등과 고민이 깊어지고 주변의 모든 사물을 호명하며 자신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좋다, 이 팔은 무엇을 하기 위한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에 쓰는 다리냐?

 

‘의심의 소녀’를 제외한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아름다운 외모 보다는 빛나는 눈동자, 총명한 눈빛, 해갈되지 않는 호기심과 갈증을 머금고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나오미 울프’는 자신의 책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여자 아이들이 남성적인 문화의 책을 읽으면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 작가들이 그린) 이야기에서 말하는 것을 뒤집어버린다. (…) 아마 아름답지 않았다면 큰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흥미롭든 흥미롭지 않든 이야깃거리는 “아름다운” 여성에게 일어난다고 배운다. “아름답지” 않은 여성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고 말한 바 있다. 그간 조명되어 온 근대문학에서 ‘시린 눈처럼 하얗고 가냘프게’ 그려졌던 여성상은 여성들이 쓴 소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던걸> 시리즈는 소설집 ‘의심의 소녀’, 시집 ‘캐피털 어웨이’, 수필집 ‘내 머릿속에 푸른 사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