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묶인 채 고통스럽게 화형 당하는 ‘잔다르크’를 연기하는 배우 진 세버그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모습. 이 오프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헐리우드 스타 감독이었던 오토 프레민저의 영화 <성 잔다르크>(1957)로 세간의 관심 속에 데뷔한 진 세버그는 이듬해 같은 감독 작품 <슬픔이여 안녕>(1958)으로 입지를 굳힌 후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의 주인공이 되면서 프랑스 누벨바그의 중심에 선다.
영화 <세버그>는 커리어의 정점에 선 진 세버그가 영화 촬영을 위해 LA로 떠난 이후부터의 삶을 조명한다. 비행기에서 자신이 맡게 될 ‘두 남자를 거느린 주부’ 역할에 대해 매니지먼트와 이야기를 나누던 세버그는 말한다. “전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세버그는 언제나 다른 걸 원했다. 사회적으로 더욱 가치 있는 일을 찾아다녔고 미국 시골 출신으로 파리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데렐라 이미지 또한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세버그의 눈앞에 흑인 인권 운동가 ‘하킴 자말’이 나타난다.
하킴 자말이 활동하는 ‘흑표당’의 중심에 서서 연대의 제스쳐로 주먹을 들어 올리는 세버그.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것은 수 십대의 카메라만이 아니었다. 소설가 로맹 가리와의 연애, 뚜렷한 정치색, 알콜 중독, 여러 번의 자살 시도. 영화 <세버그>는 이 자극적인 사건들을 진 세버그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며 그가 얼마나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강인한 사람이었는지를 비춘다. 동시에 그녀를 도청하는 FBI 요원 ‘잭’의 시선을 경유하며 당시 진 세버그가 마주해야 했던 편견과 여성혐오를 여실히 드러낸다. 혁명의 주동 세력으로 FBI의 타겟이었던 ‘흑표당’을 공개 지지하고 ‘전국 유색인종 향상 협회’를 후원한다는 이유로 세버그는 곧 FBI의 저격대상이 된다. 흑인 남성으로 구성된 ‘흑표당’을 처리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자본을 공급하는 여배우를 제거하는 일은 FBI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FBI는 세버그의 집을 비롯해 모든 곳을 도청하고 감시하며 그의 삶을 서서히 망가트린다. 흑표당을 지지하는 세버그의 의도를 ‘흑인과 한 번 뒹굴어보고 싶은 것’이라는 말로 짓밟거나
(필요하지 않아도) 그의 침실에는 반드시 도청장치를 달라는 명령을 하고 종내에는 임신에 관한 헛소문을 퍼트리는 등 인권 유린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는 여성이 대중 앞에 나서는 직업을 가졌을 때 어떻게 수많은 약점을 품은 존재가 되는지, 그 약점으로 인해 추락하기는 얼마나 쉬운 지를 보여주며 여성이 여전히 사회적 약자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방식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가 또 다른 소외계층을 지지할 때 기득권으로 하여금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 힘들어하는 자신을 떠나려는 남편을 향한 세버그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당신은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싫은 거야.”
진 세버그는 끝까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철회하지 않았다. 국가라는 거대 권력으로부터의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았지만 상처 또한 많았다. 기억하고 호명하는 것이 연대가 될 수 있다면 <세버그>를 보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