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현의 화자는 우리와 함께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카페와 식당 사이에서 쿠폰을 찍으며, 디저트를 먹으며 지하철에 앉아 합정과 당산 구간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듯 일상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방식이 아니다. 박규현은 일상으로 치부되는 당연함 속에서 이상함과 어긋남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시를 쓴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시가 될 때 우리는 더 용감해진다.

박규현은 여자들을 본다. 닭다리는 오빠에게 양보해야 했던 여동생, 늘 챙기고 정돈해야 하는 누나와 엄마와 할머니, 피 흘리는 여자, ‘화장실에 가서 찔려 죽지 않고 몰래 찍히지 않고 욕의 기원이 되지 않고 벗겨지지 않고 착해지지 않고 웃지 않고 밥하지 않고 맞지 않는’ (신의 ‘회복’) 여자들. 이 불균형을 그대로 보고 느끼는 화자는 비장한 선언이나 과한 수식 없이 직설적으로 균열을 말한다.

이 시집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소수자로 자신을 정체화 하면서도 세계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수동적으로 응시하거나, 외면하면서 무해하게 그저 존재하는 방식의 시집들 사이에서 박규현의 화자는 발산하고 움직인다. 잘못 적힌 이름을 보면 ‘그것은 틀렸다. 우리는 틀리다.’ (로쿄, 로쿄) 라고, 오빠에게 ‘나한테 피싸개라고 하지마’(아주 오래)‘라고, ‘누군가 내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화가 나는 게 느껴진다 이 사실이 나를 살게 한다’ (촉력)고 말한다.

물론 분노는 하나의 리액션일 뿐 동력이 되지 않는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화자는 정사각형 공간에서 양배추를 먹으며 언젠가 구획이 나뉜 집을 꿈꾼다. 이런 화자에게 미래는 계속해서 ‘헛스윙’을 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무엇이고 박규현은 반복되는 행위의 시도 그 자체가 삶인 듯 빗나가는 것들에 대해 쓴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로쿄’에게 화자는 내 얼굴을 선물한다. 로쿄가 된 나는 그제야 로쿄를 본다. 우리 모두는 유일한 내가 된다.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