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은 당연하다는 듯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 에티엔 샴보는 물질과 의미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드러내 보이며 제안한다.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눈으로 세상을 응시해보라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을 따라 전시장 안을 누빈다. 금박을 입힌 오래된 이콘화(종교화). 신과 인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동물들만 자유로이 그 속에서 뛰논다. 다양한 자리에 배치된 작품을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하나 하나 들여다보는데, 누군가 벗어 던진 듯한 양말이 한쪽 구석에 툭 놓여 있다. 의아해하며 바라보다 그것이 청동 조각임을 깨닫는다. 갤러리에서 나와 1층 창문 너머에 있는 네온 설치 작품을 마주한다. 무언가를 지우고 싶은지 이리저리 X자를 쳐둔 듯한 모양새지만 역설적으로 자신과 그 주변을 환히 비춘다.

에티엔 샴보의 개인전 <Prism Prison>을 감상한 뒤 생각한다. 오래된 생각이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고.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을 응시할 때, 삶에 잠재된 여러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3월 9일까지 에스더 쉬퍼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에티엔 샴보와 이야기를 나눴다.

벽에 걸린 ‘Untamed’와 바닥에 놓인 ‘Topos’.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을 축하한다. 전시 제목을 <Prism Prison>으로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prism’과 ‘prison’은 발음이 유사해 한 번 듣고 구별하기 어려운 단어다. 듣기엔 비슷해도 뜻은 다르다는 점에서 ‘같다고 인식되는 것도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를 상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개의 층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을 다채롭게 채웠다. 2층에서 볼 수 있는 ‘Untamed’ 연 작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한 것인가?

2백~3백 년 전에 만들어진 그리스정교회 이콘화를 수집한 뒤, 그 위에 금박을 덧씌워 원래 모습을 가리고 말, 소, 양 같은 동물의 형태만 도드라지도록 작업했다. 거대한 종교적 서사를 품은 이콘화 속에서 동물은 성자가 타는 도구 정도로만 부수적으로 다뤄져왔다. 그들을 기존의 서사와 의미로부터 해방시키고 싶었다. 물론 금박에 덮여 그 모습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말이다.

어두운 공간에서 손전등을 비춰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동굴에 처음 그린 동물 중 하나가 말이라고 한다. 인류는 문화를 형성하며 동물에 관한 여러 은유를 만들어오지 않았나. 동물을 최대한 본연의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선사시대 동굴을 탐험하듯 어두운 곳에서 손전등을 이용해 작품을 감상하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들이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길 바라며, 작품을 감상자의 눈높이에 맞춰 정렬하지 않고 각각 다른 높이에 설치했다. 관람객이 손전등을 든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감상하면 더욱 사적인 방식으로 작품과 조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Untamed’를 감상하다 생뚱맞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양말을 발견했는데, 청동을 양말처럼 주조한 ‘Topos’ 연작이었다. 이것을 ‘Untamed’와 함께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topos’는 그리스어로 위치를 뜻하는데, 의도적으로 설치한 작품(‘Untamed’) 과 버려진 듯한 작품(‘Topos’)을 병치해 작품 사이의 긴장감을 더하고 싶었다. ‘Topos’는 언뜻 보면 아무렇게나 벗어둔 양말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은하의 모습이나 복잡한 수학 그래프와 닮아 있다. 매일 볼 수 있는 사물인 양말과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존재인 우주가 대비되는 양상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3층에 위치한 ‘Zebroid’ 또한 말을 탐구한 작품으로 보인다. 청동으로 주조된 말 조각을 자르고 이어 붙이며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나?

말을 물리적 한계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목 부위를 자른 뒤 길게 늘여 실제로 할 수 없는 동작을 취하게 하고, 몸을 절반으로 잘라 한 마리지만 두 마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식이다. 재미있는 점은 말의 몸이 파편화되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것이 말임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형태가 온전하지 않아도 말이라 인식할 수 있는, 물질과 의미 사이의 오묘한 긴장감을 담아내려 했다.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오브제를 새롭게 변형한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평소 어떤 방식 으로 오브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작업에 활용하는가?

우선 관심을 두고 있는 개념에 대해 탐구하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생각한 다음 이를 구현하는 데 적합한 물 체를 찾아 그 생각을 반영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예를 들어 ‘Zebroid’ 작업을 할 때는 말의 이미지를 먼저 찾은 뒤 손으로 직접 그려봤다. 그런 다음 청동 말 조각을 찾아 구매했고, 3D 모델링으로 어디를 자르고 이어 붙일지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실제로 조각을 자르고 재조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업을 이어나가며 관심을 둔 주제는 무엇인가?

사물에 의미가 부여되고 또 변형되는 과정. 인간은 특정한 사물이나 이미지를 본 뒤 그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다. 하나의 대상에 특정한 견해가 더해질 때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그에 담긴 뜻이 변하기도 한다. 나는 작업을 통해 고착화된 생각에 매몰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려고 한다. 작가로서 그 사물들에 현대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또 다른 관점을 만들어내고 싶다.

벽에 걸린 ‘Untamed’.
이콘화에 금박을 씌워 변형한 ‘Untamed’ 연작의 일부.

작업을 하며 수많은 사물을 마주했을 듯하다. 이러한 과정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하나?

글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사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더 적은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본질이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개념이지만, 나는 물질의 현상이나 표면을 바라볼 뿐 본질을 탐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말 조각을 자르면, 이것이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절단 면이 어떤 모양인지, 그리고 그 안이 텅 비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말의 본질은 알 수 없다. 결국 내 작업은 가능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말 조각을 잘랐을 때 속이 비어 있는 것처럼 사실 본질도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싶다.(웃음)

감상자가 작품을 본 뒤 각자 해석하는 과정 또한 당신에게 흥미로운 영역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맞다. 전시를 시작하는 순간 작품은 내 손을 떠난다. 감상은 오로지 관람객의 몫이니까. 작품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지만, 모범 답안을 정해 이런 방식으로 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또 다른 시선을 강요하는 일일 테니 말이다. 내 의도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아도 좋다.(웃음) 내게는 그저 작품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를 감상한 관람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가?

무엇을 바라보든 익숙한 생각에서 한발 멀어져 새로운 시각을 가지길 바란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전시를 보고 난 뒤 집에 가서 양말을 벗어놓고 한참 바라보며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우주의 존재, 그리고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대하여.(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