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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풍경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호주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초청으로 시드니와 누벨칼레도니의 수도 누메아 사이의 코럴해에서 작업할 기회가 생겼다. 배 내부에 마련한 레지던스에 머무르며 12일 동안 바다를 항해했다. 주제를 정하지 않은 채 배에 올랐는데, 파도를 따라 흔들리는 해먹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갑판에서 나아갈 방향을 살피며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그게 총 62장으로 구성한 ‘바다 풍경(Seascapes)’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사진 속 바다 풍경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바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한 사진인지 궁금하다. 당시 매일 바다를 촬영했지만, 그 결과물이 눈앞의 멋진 경관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유를 짚어보니 카메라가 현실을 조각내어 가렸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통상적인 촬영 방식에서 벗어나 착시 현상이나 색상 왜곡 등이 일어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유리, 천, 거울을 렌즈에 가까이 대거나 가상의 바다 모형을 만들어 활용하는 식이었다. 이후 암실에 들어가 후반 작업을 거치며 사진을 완성해갔다.
당신이 완성한 바다 장면에서 무엇이 보이기를 바랐나? 풍경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인 물, 공기, 빛만 남겨두고 싶었다. 무형의 공기와 빛도 형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매 순간 변하는 세 요소의 관계가 결국 찰나의 장면을 탄생시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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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형태에 집중하고, 다양한 색을 활용한 덕분인지 사진이 추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포착한 바다 풍경은 형태와 색, 추상의 영역 안에서 예순두 번 변주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색은 내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머리가 아닌 마음을 따르며 사진에 활용할 색을 본능적으로 택했다. 평소 미술을 좋아하고, 한때 화가를 꿈꾼 적도 있어 내 사진이 그림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난 카메라를 매개로 이 세상을 다르게 보여주고 싶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사진과 미술, 구상과 추상,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프로젝트의 닻은 분명히 지리적 현실에 내려져 있다. 그래서 지구 곳곳에 실존하는 바다의 이름을 각 사진의 제목으로 붙이기도 했다. 그 제목들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과연 진실인지 의문을 품게 되기를 바란다.
어떤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근본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이 세계의 근원과 생명의 비밀이 궁금하다.” 사진 작업을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가고 있다. 카메라를 들며 자연이, 삶이 지닌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수록 인간의 무지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점점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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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싶나? 바다를 향해 셔터를 누를 때 ‘대양감(Oceanic Feeling)’을 느꼈다. 대양감은 소설가 로맹 롤랑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쓴 편지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벗어나 나를 둘러싼 세계와 하나 된 듯한 느낌을 가리킨다. ‘영원’에 대한 그 감각이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삶을 살아가며 마주한 ‘빛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고 싶다. 단 하루의 일상에도 다양한 빛나는 순간이 있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내 아이들이 탄생하던 때다. 그리고 지금 문득 생각나는 빛나는 순간은 처음으로 모래사막을 찾아간 날 마주했다. 노을을 바라보며 광활한 자연 한가운데 존재할 때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이 또한 영원에 대한 감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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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며 자연이, 삶이 지닌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수록 인간의 무지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점점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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