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셔터를 누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을 거슬러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언젠가 아주 그리워하게 될 거란 사실을 단번에 깨닫게 되는 장면들 앞에서.
32명의 문화 예술계 인물들이 휴대폰 사진첩 속에서 소환한
각자의 보석 같은 순간들.
2023년 9월 7일,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카페. 문학동네 정민교 편집자, 김민정 시인과 함께 내 첫 시집의 제목을 결정하던 날. 이날 파주에서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은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임유영(시인)
누군가의 숭고한 노력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참 값진 것 같다. 올해도 좋은 거 많이 보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그렇게 건강하게 살고 싶다. 다들 올해도 재밌게 보내길! 이설(배우)
2023년 크리스마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엄마랑 단둘이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의 긴자역에서 나와 호텔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비눗방울이 가득한 길을 발견했다. 아이처럼 손을 뻗고 “와~” 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엄마를 보며 행복감에 코가 찡~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은 순간.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서수현(디자이너)
지난여름 친구들과 갑자기 떠난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첫날 찍은 사진.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 먼지를 뚫고 한참을 걷다 보면 베이스 사운드가 커지다 못해 몸을 관통하며 울린다. 그때 맥주 대신 레모네이드 한 잔! 오존(뮤지션)
지난해 LA 출장 기간에 시간을 내어 찾아간 말리부의 숙소. 절벽 위 수영장에 누워 마트에서 산 해바라기씨를 몇 시간 동안이나 까먹었다. 자이언티(뮤지션)
어느 날 갑자기 키보드에 햇빛이 비쳤다. 문득 빛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질 때면, 달력의 숫자보다 더 선명하게 다음 계절이 다가옴을 깨닫는다. 이모세(만화가)
강원도 양양 출장 중에 마주한 사랑스러운 풍경. 여름의 낭만을 조금 비껴간 해변의 노을이 아름다워서 그랬을까. 함께 해변을 거닐다 우두커니 서서 사진을 찍어주는 남자와 한사코 사양하는 여자의 모습이 돌연 사랑스러워 보였던 걸까. 우리 일행은 멈춰 서서 그들을 한참 바라봤다. 이 사진을 건넬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넉넉히 다정했던 그날의 기억. 현예진(프리랜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