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셔터를 누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을 거슬러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언젠가 아주 그리워하게 될 거란 사실을 단번에 깨닫게 되는 장면들 앞에서.
32명의 문화 예술계 인물들이 휴대폰 사진첩 속에서 소환한
각자의 보석 같은 순간들.

이진(큐레이터)가 찍은 자연 풍경

우연히 만난 그림같이 아름다운 순간을 담기 위해 그 시간의 기억을 사진으로 기록하곤 한다. 예술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이지만, 자연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풍경은 인간의 창작물 그 이상의 반짝임을 느끼게 하는 듯하다.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그리며 보았던 인생 최고의 순간이기에 그 기억은 더없이 값진 보석처럼 반짝인다. 이진(큐레이터)

최엘비(뮤지션)이 직은 꽃밭

소중한 사람과 처음 정식으로 약속을 잡은 날. 내가 좋아하는 곳을 다 보여주겠다는 욕심에 동선을 무리하게 짜서 힘든 발걸음을 옮기던 중 꽃밭이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힘든 일정에도 묵묵히 따라와주던 그 사람이 꽃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 유난히 고맙고 소중했다. 최엘비(뮤지션)

김규린(패션 크리에이터)가 찍은 LA 여행 순간

“오, 필름 다 썼네” 하며 LA 공항에서 찍은 사진. 한 달간의 미국 여행 끝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그저 집만 떠올리던 순간.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사진 속 장면이 참 반짝인다. 깨질세라 가방 안에 욱여넣은 LP, 빈티지 액자, 다 쓴 필름, 여행의 기억, 소진된 마음까지도. 김규린(패션 크리에이터)

황예지(사진가)가 찍은 자연 풍경

이 평야가 그리우려나? 마음이 부산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와닿지 않으면 입속말로 실감, 실감 하고 되뇌었다. 자연을 보면서 경이 다음으로 태곳적 슬픔 같은 걸 느끼는 것 같다고. 아니면 수많은 야수들을 보고 작년에 떠난 우리 집 야수가 그리운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황예지(사진가)

최경주(판화가)가 찍은 일상의 순간

연희동으로 이사한 이래 청소가 매일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청소가 지겨워질 때쯤, 벽에 무심히 세워둔 대걸레에 겹친 햇빛의 레이어가 영롱해 보였다. 대체로 ‘메롱’이던 당시의 시간 속 나쁘지 않은 찰나였다. 겨울에 이 사진을 보니 그때가 그립다. 최경주(판화가)

이규한(디자이너)가 찍은 밀라노 구찌 전시장에서의 행복한 순간

한 번쯤 해외에서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품고 있었는데, 지난해 좋은 기회로 구찌 홀스빗 70주년 기념 전시에 참여했다. 밀라노의 작은 스튜디오에 머무르며 약 2주의 시간을 작업하며 보냈다. 전시 설치 후 찍은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6월의 밀라노에서 보낸 행복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더없이 소중한 기억. 이규한(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