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셔터를 누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을 거슬러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언젠가 아주 그리워하게 될 거란 사실을 단번에 깨닫게 되는 장면들 앞에서.
32명의 문화 예술계 인물들이 휴대폰 사진첩 속에서 소환한
각자의 보석 같은 순간들.
지난해 8월 덴마크를 여행할 때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을 찾아갔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니 불쑥 나타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코너.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리거나 미술관에서 본 작품에 대한 감상을 그림으로 남긴 듯했다. 역시 아이들 작품 특유의 반짝임은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아름다운 작업물을 구경하며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던 기억을 잊지 말아야지! 사키(미술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일몰.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해가 보고 싶어 무작정 서해로 가서 3일 정도 지낸 때였다. 주변에 빛도 사람도 소리도 없어 세상이 지금 저무는 해와 같이 정말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두고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날의 모든 감각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박서희(모델)
언제 봐도 행복해지는 사진. 어릴 때 이후로 맞춰본 적 없는 레고를 오랜만에 다시 조립하다 보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았다. 완성된 레고 자동차들을 보며 행복해하면서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귀엽다고 느꼈다. 공명(배우)
함부르크 여행 중 정처 없이 길을 걷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마주한 장면. 할아버지 한 분이 차에서 내려 짐을 정리하고 계셨고, 그 뒤로 보이는 다리의 거대한 스마일 장식이 뒤돌아선 할아버지의 표정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중충하면서도 쨍쨍한 듯한 날씨도, 모르는 누군가의 하루를 대신 전해주려는 듯한 기분도, 이상하리만큼 빛나고 위로가 될 정도로 따뜻했다. 홍정희(비주얼 디자이너)
일본계 미국인 M은 교환학생 기간을 마무리하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책바에 방문했다. 마감 즈음마다 그는 한글로, 나는 영어로 각자 분투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어느새 그가 내 책을 구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가 떠나기 며칠 전 방문한 날 우연히 발견한, (민망하면서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장면. 정인성(책바 대표 겸 작가)
나보다 앞서 걷는 작은 존재가 내 삶에 들어왔다. 나는 매일 녀석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서지만 정작 내 삶을 이끄는 건 이제 저 작은 발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토리’와 함께 보는 첫눈이었다. 신승엽(1984Books 대표)
2022년 베를린 아토날 공연 중, 몸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하나의 광원에서 엄청난 섬광이 번쩍였다. 그 모습이 마치 신의 현현을 보는 듯했다. ‘신이 있다면, 내가 흔히 아는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저런 빛의 형태로 나타나겠구나. 신은 빛이구나, 빛은 신이구나’ 하고 느낀 순간. 윤준희(뮤직비디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