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조선희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케냐 투르카나(Turkana)의 여러 마을을 찾아가
현지의 일상을 프레임에 담았다.
메마른 강바닥을 한참 파내야 겨우 스며 나오는
흙탕물을 마시며 사는 사람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적인,
가장 순수한 삶에 강하게 깃든 생의 기운에 대하여.
케냐에서 사진 작업을 진행한 계기는 무엇인가?
유니세프 코리아(Unicef Korea)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케냐의 투르카나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이때 내 개인 작업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지의 자연환경과 삶을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나만의 시선으로 담고 싶었다. 케냐에 도착한 후 6시간 가까이 비포장도로를 달려 북서부의 도시 로드워(Lodwar)에 갔다. 이곳을 기점 삼아 12일 동안 주변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직접 마주한 투르카나 사람들의 생활은 어땠나?
투르카나는 극심한 가뭄으로 식수난을 겪는 지역이다. 그곳 사람들은 메마른 강바닥을 파내면 겨우 스며 나오는 흙탕물을 마시며 생활하고 있었다. 한때 강이 흐르던 곳으로 걸어가 땅을 깊이 파고,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그 옆에 새로운 구멍을 파는 식이었다. 어렵게 얻어낸 뿌연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처음에는 ‘마셔도 괜찮을까?’ 싶었는데, 그들은 흙탕물에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현지 사람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 쏟는 시간이 상당할 것 같다. 물을 구하러 다녀오는 데 짧게는 1시간, 길게는 7시간이 걸린다더라. 길을 나서는 사람은 대부분 7~10세 아이들이다. 커다란 노란색 물통 한 개의 가격이 우리 돈 35원인데, 그 돈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물을 얻을 수 있는 땅으로 향했다. 자본의 차이로 공평한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하는 거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물을 긷기 위해 쓰는 그들을 보며 어쩌면 언젠가는 물이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존을 위해 매일 물을 긷는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투르카나 사람들은 힘겹게 살 거라 예상하겠지만, 오히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무거운 물통을 바퀴 굴리듯 굴려 편하게 옮기는 장면을 보며 그들이 터득한 생활의 지혜에 감탄했다. 그 삶은 결코 비참하거나 절망스럽지 않다. 투르카나에 머무는 동안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많이 봤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들이 행복하다는 게 느껴지더라. 살아가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둔, 가장 순수한 삶을 투르카나에서 목도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제목을 ‘Water Is Life’로 정했다.
투르카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버텨내며 살아가지 않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척박한 환경에서 지내는 투르카나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밝고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오늘날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 내가 투르카나에서 느낀 생의 기운이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가닿았으면 한다. 또 많은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린 존재들을 위해 기부하며 관심과 사랑을 전하기를 바란다. 이는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다.
우리는 사진 등을 보며 가뭄을 비롯한 기후 문제를 접하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그 위기를 안일하게 생각하기 쉬운 듯하다.
맞다. 7년 전 남미에 갔다가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10분에 한 번꼴로 들리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더라. 이처럼 기후위기가 피부에 와닿는 경험을 할 때,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자연환경을 잘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사진가로서 이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앞으로 프레임 속에 어떤 세상을 담아내고 싶나?
창작자는 각자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작업으로 선보이지 않나. 난 오지가 만들어내는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발표하며,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가다 놓치는 것들에 대해 함께 상기하고 싶다. 사진가로 활동해온 3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아직 못 가본 곳에도 한 번씩은 꼭 가보고 싶다. 그러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카메라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