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안에서 매 순간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 그 너머의 세상과 연결되는 일.
싱어송라이터 페더 엘리아스(Peder Elias)는 나다운 음악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

화이트 재킷 Calvin Klein, 실버 링은 본인 소장품.

지난 4월 열린 내한 공연 이후 두 달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어요. 머무는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인데, 벌써 집에 온 것처럼 편해요.(웃음) 어제는 성수동의 한 루프톱 카페에서 작은 게릴라 공연을 했어요. 아늑한 분위기에서 팬들과 둘러앉아 노래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죠. 이번 일정의 소중한 추억이 될 듯해요.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새 앨범 준비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들었어요.

세 번째 앨범 작업에 한창 몰두하고 있어요. 영국과 스웨덴,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협업을 시도하는 중이에요. 제가 팝 음악에 처음으로 깊이 빠져든 2000년대 음악에서 영감 받은 곡으로 채울 예정이라 이번 앨범에 애착이 무척 커요. 지금까지 선보인 앨범 중 최고일 거라 자부해요.(웃음)

페더 엘리아스라는 뮤지션을 <전국노래자랑>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한국 팬도 많을 거예요.(웃음) 광주 남구 편의 참가자로 등장해 큰 화제가 됐죠.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됐나요?

색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던 차에, 한국에 굉장히 유서 깊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침 해외 아티스트 참가 자가 처음이라니 더욱 흥미가 생겨 직접 지원해서 나가게 됐죠. 방송이 공개되고 수많은 어르신 관객 앞에서 한국어로 노래하는 제 모습을 보니 이곳의 특별한 전통을 제대로 경험했다 싶더라고요.(웃음)

첫 곡으로 쿨의 ‘아로하’를 부를 때 발음이 아주 정확하던데요.(웃음)

평소 좋아하는 곡이에요. 가사가 참 아름답더라고요. 발음에 관해선… 솔직하게 말하면 커닝 페이퍼가 있었어요.(웃음) 아직 한국어에 익숙지 않아서 가사를 소리 나는 대로 노르웨이어로 옮겨 적어 스케치북을 만들어 갔거든요. 감쪽같이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방송에도 스케치북 넘기는 장면이 다 담겼더라고요.(웃음)

오렌지 셔츠와 팬츠, 아이보리 슈즈 모두 Zegna.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군요.(웃음) 한국을 두 번째 고향이라 말할 만큼 이곳에 애정이 큰 것 같아요. 그 인연이 시작된 순간을 기억하나요?

팬데믹 기간에 ‘Bonfire’라는 곡이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한국을 기점으로 아시아 전역에 제 음악이 퍼져나갔어요.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제게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 셈이죠. 신기하게도 한국 팬들에게는 처음부터 강한 유대감을 느꼈어요. 마주한 적이 없는데도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기분이 들었고, 그들도 저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한국의 팬들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처음 도착한 날, 공항에 많은 팬이 마중 나온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한국의 팬덤 문화는 굉장히 특별해요. 제가 나고 자란 노르웨이에서는 특정 아티스트의 팬이라고 자 신 있게 드러내는 경우가 흔치 않거든요. 그보단 곡에 대한 애정으로 에둘러 표현하곤 하죠. 그 반면에 아시아 팬덤은 적극적으로 단합하고 표현도 훨씬 풍부한 것 같아요. 재작년에 홍대에서 게릴라 버스킹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많은 분이 제게 다가와 “오늘부터 페더 엘리아스의 팬이에요!”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런 면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어요.

아마 진심이었을 거예요.(웃음) 그만큼 페더 엘리아스의 음악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겠죠.

많은 팬이 제 음악을 ‘편안하다’고 묘사하더라고요. 음악을 만들 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라 그런 반응을 접할 때면 기분이 참 좋아요. 같은 언어로 노래하지 않아도 곡에 담긴 에너지가 잘 전달되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음악 안에서 나 자신일 수 있고, 그렇게 만든 음악으로 많은 사람과 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기뻐요. 음악이 지닌 연결의 힘을 더욱 믿게 됐고요. 지금까지의 제 커리어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그 증거라고 생각해요.

편안함이 느껴지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향하는 작업 방식이 있나요?

어느 곡이든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담기보다 직관을 따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직접 경험한 일이나 당시 느낀 감정을 기반으로 곡을 쓰는 이유 이기도 하고요. 작곡을 일로 대하기보다 그날 쓰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제 음악도 서서히 변화해가는 걸 느껴요. 시기마다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직관을 믿으며 작업해가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이 있는지 궁금해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질문하다 보면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Bonfire’를 작업하던 때를 예로 들면, 이 곡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캠프파이어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구현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어요. 여러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베개를 치거나 병을 두드리는 식으로 베이스드럼 사운드를 수집해 현장감을 더했죠. 가사를 쓸 때도 지나치게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마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처럼 최대한 단순하게 적어 내려가는 방식을 선호하고요.

오랜 시간 음악을 만들며 찾아낸 기준으로 다가와요. 긴 시간 음악과 함께할 수 있던 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큰 동력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아주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방에서 팝 음악을 부르고 기타를 치면서 보냈거든요. 노래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았더라도 여전히 음악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거고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음악이 있는지 스스로 깨닫고,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고 듣는 모든 과정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이 저를 움직였어요. 이렇게 만든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요.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 지닌 분명한 영향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죠.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에게 음악은 언제나 필요할 거예요. 다양한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니까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오늘 촬영장에 정규 2집의 수록곡 ‘Paper Plane’을 떠올리며 종이비행기 여러 장을 가져와봤어요. 하고 싶은 말을 적어 한 장의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낼 수 있다면, 그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나요?

음…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을 것 같아요. 곧 나아질 거라고, 버텨야 한다고, 음악을 통해 그 힘을 찾아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