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가 콜린 휴스는 맨해튼과 스태튼아일랜드 사이를 오가는 배에 꾸준히 올라 카메라를 들었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을 벗어나 항해의 순간을 충실히 누리는 사람들.
그 장면에 스며든, 삶이라는 여행의 아름다움.

뉴욕의 맨해튼과 스태튼아일랜드를 오가는 배에서 사진을 촬영해왔다. 이 작업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2016년부터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당시 나는 뉴욕에 5년째 거주 중이었는데, 매 순간 많은 것이 바뀌는 이 도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미네소타주의 호숫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물은 항상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맨해튼과 스태튼아일랜드 사이의 바다를 가르는 배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를 계기로 지난 8년간 꾸준히 배에 오르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건축적 지식이 공간을 인지하는 감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주로 배의 어떤 공간을 사진에 남겼나?

배의 실내와 실외, 구석진 좌석 등을 면밀히 살피며 촬영할 장소를 정했다. 공간의 분위기는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배에서 보내는 시간 중 이른 아침과 낮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특히 해가 낮게 뜨는 겨울에는 수면이나 배의 표면에 반사되는 놀라운 빛을 볼 수 있었다. 빛은 내가 사진을 찍을 때 늘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빛에 따라 평범하고 단조로운 장면도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진가로서 고민한 것이 있다면?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장기간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촬영 여부를 고민해야 했다.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를지, 사진가로서 충동을 따르는 대신 그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을지 결정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한 과정이었다. 사진은 사진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배의 탑승객이 이 프로젝트를 한층 다채롭게 만들어준 듯하다. 무수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배에 오르내렸을 것 같다.

맞다. 배는 하루 종일, 30분 간격으로 출발했고 운항 시간은 25분이었다. 나이, 인종, 국적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출근과 여행 등을 위해 배에 올랐
다. 무작위로 집단을 이룬 그들이 한 공간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모습을 보는 건 생경한 일이었다. 탑승객이 잠시나마 집으로 여겼을 배의 본질을 사진에 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잠시 동안의 집(Home for Now)’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탑승객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돋보기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중년 여성이 떠오른다. 태연한 듯한 모습이 기묘한 느낌을 안겨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두 딸과 함께 책을 읽던 아버지,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아침 햇살을 맞으며 귀가하던 간호사도 기억에 남는다. 이처럼 탑승객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배에 있었다. 그들이 배 안에 어떻게 자리하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살피는 게 흥미로웠다.

그 모습을 관찰하고 포착하며 어떤 생각을 했나?

숨 가쁘게 굴러가는 도시의 시간이 배에서만큼은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항해하는 동안 배를 벗어날 수 없는 탑승객들은 어떻게든 그곳에서의 시간을 활용하려고 했다. 25분은 그다지 길지 않지만, 무언가를 하면서 새로운 걸 보고 듣고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지 않나. 주어진 몇 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그 시간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이에 대해 고찰하다 보니, 결국 모든 존재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이 프로젝트를 비롯한 당신의 사진을 마주한 사람들이 무엇을 새롭게 느끼기를 바라나?

내 작업은 대부분 우리가 속한 시공간을 보다 깊이 감각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러한 호기심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내게 이 세상은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곳이다. 이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사진을 통해 다정하고 친근한 시선을 전해주고 싶다. 그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카메라가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살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진과 함께하는 그 여행의 목적지가 이제는 선명히 보이는 것 같나?

그렇진 않다. 이 여행은 목적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여행 도중에 마주하는 정거장들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나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다양한 경험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을 일굴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삶은 여행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어쩌면 우리 삶에서도 목적지보다 정거장들이 지닌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목적지에 당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운 채 25분의 시간을 충실히 누렸다. 삶이라는 여행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미래에 천착하지 말고, 현재에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조급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삶의 아름다움은 저 멀리 어느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내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