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건축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온 하이테크 건축의 선구자,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그는 첨단 기술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과 환경 모두에 이로운 공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60여 년에 걸친 작업으로 증명해왔다.

독일 국회의사당 도면. 노먼 포스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을 리모델링해
기존의 돔 구조를 전망대로 만들었다.
ⓒDrawn by BPR for Foster + Partner

역사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요구를 반영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포스터의 건축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거장의 사유가 담겨 있다. 지난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를 마무리하며, 노먼 포스터가 생각하는 건축의 본질과 그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물었다.

ⓒCarolyn Djanogly

“건축은 본질적으로 변혁적 행위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사무 공간부터 고층 건물, 공항 터미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 유형과 인프라, 나아가 도시를 재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당대의 기술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뿌리 깊은 전통과 관습에 도전해왔다.
이 혁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태도다.”

마르세유 파빌리온 스케치. 쇠퇴한 마르세유 구항에 공공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더하고자 설계한 구조물이다.
ⓒFoster + Partners

지속 가능성은 당신의 건축 세계에 깊게 뿌리내린 철학이자 실천 방식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 전인 1960년대부터 일찍이 친환경 설계에 대한 확신을 품고 나아갈 수 있었던 동기를 묻고 싶다.

건축계에 입문한 1960년대 무렵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나 환경학자 R. 벅민스터 풀러의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와 같이 지구의 취약성을 암시하는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다. 그 당시 제기되던 환경에 대한 우려에 건축가로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초기 작업을 꾸려나갔고, 이후 1975년 카나리아제도의 라고메라섬(La Gomera)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지역 계획 연구를 수행하면서 물과 폐기물, 재활용과 에너지 전환에 대한 총체적 접근 방식을 수립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직관에 따라 이러한 시도를 해왔지만, 지금은 지속 가능성이란 화두의 중요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어느새 주류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건물 내부에 자연을 들여 오피스 구조를 혁신한 윌리스 페이버 앤 두마스(Willis Faber & Dumas) 본사를 시작으로 건물 전체가 재생에너지로 가동되는 제로 에너지 빌딩 애플 파크(Apple Park)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물에 오랜 시간 천착해왔다. 해당 건물을 구상할 때 사용자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고려를 더했나?

학창 시절부터 인간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며 일할 수 있는 건물을 상상하며 자연광과 전망, 신선한 공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면 위에 구체적으로 그려보곤 했다. 이를 단초 삼아 건물 내부의 공기를 자체적으로 순환시키는 자연 환기 시스템을 고안했고, 이를 세인즈버리 시각 예술 센터(Sainsbury Centre for Visual Arts) 같은 초기 작업부터 런던의 블룸버그(Bloomberg) 본사, 애플파크 등 비교적 최근 프로젝트에도 일관되게 적용했다. 이른바 ‘호흡하는 건물’이라 불리는 이 건물들은 마치 나무처럼 스스로 숨을 쉬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계절의 변화에 반응한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자연 채광을 받으며 휴식을 즐기고, 건물 내부에서 청정한 외부 공기를 들이쉬고, 보다 넓은 시야로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이처럼 도시와 건물 곳곳에 자연을 끌어들일 때 인간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진다. 지속 가능한 건물이 우리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한다는 사실은 2016년 자연 환기 시스템을 갖춘 건물의 이점을 정량적으로 밝혀낸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연구가 뒷받침하고 있다.

뉴욕의 허스트 타워(Hearst Tower), 런던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처럼 기존 건물의 특색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레트로핏 작업 역시 결국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오래된 건축물이 지닌 역사는 존중하면서도 공간을 향유할 미래 세대에게도 의미 있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중요하게 여긴 점은 무엇인가?

독일 국회의사당과 같이 시민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 건축물을 재활용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건물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다. 건축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이 어떻게 사용되고 변화할지를 그려볼 수 있어야 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 오래된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될 수도 있고 보수적으로 접근해 필요한 부분만 손보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두 경우 모두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역사적 건물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성장의 흔적이 겹겹이 남아 있다. 우리는 현재에 대한 존중을 담아 그 흔적을 계승하는 접근 방식을 취해왔다.

독일 국회의사당 스케치. ⓒNorman Foster

“건축가로서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인식하며 현재를 설계한다.”

“As an architect you design for the present,
with an awareness of the past,
for a future which is essentially unknown.”

포스터 + 파트너스(Foster + Partners)는 건물 단위의 프로젝트뿐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의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 쿠웨이트의 새로운 도시인 사우스 사바 알아 마드(South Sabah Al-Ahmad) 등 세계 각국의 도시 형태를 고안하는 마스터플랜을 계획해왔다. 도시 설계에서 공통적으로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도시 마스터플랜 작업의 핵심에는 늘 인프라와 장소 디자인이 자리한다. 거리와 광장, 공원과 교량처럼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인프라는 개별 건물을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DNA를 결정짓는다. 이 때문에 한 도시를 창조하거나, 탈바꿈시키거나, 보다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구축된 인프라를 기반으로 도시를 보다 인간 중심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장소 디자인의 역할이다. 광장과 공공 공간처럼 도시 안에 특정한 장소를 만드는 일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며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야외에서 마주하는 장소들을 건축 행위가 만들어낸 우연한 결과나 운 좋은 잔재로 여기기 쉽지만, 모든 훌륭한 장소는 특정한 의도를 담은 디자인의 산물이다.

당신에게 ‘살기 좋은 도시’란 어떤 모습인지 묻고 싶다.

살기 좋은 도시란 어디로든 걸어서 이동하기 쉽고, 누구에게나 평등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일 것이다. 급속도로 진행된 도시화로 세계 곳곳의 도시가 공간적으로 더 단절되고, 환경의 변화에 더디게 반응하며, 사회를 더 분열된 상태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이 근본적인 과제에 대처하고 평등한 도시를 이루기 위해 건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건축가들이 인간의 행동 양식과 보다 나은 삶, 식량 시스템, 교통 체계와 이동의 효율성, 도시 경제학과 같은 더 넓은 주제를 염두에 두고 설계에 접근해야 할 때다.

2012년에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럽우주국(ESA)과 함께 달과 화성 거주지 프로젝트에 착수해 지구 밖 행성에서의 삶을 연구했고, 이 연구 결과를 발전시켜 2016 년 중앙아프리카의 고립된 지역에 생필품과 긴급 의약품의 원활한 조달을 가능하게 하는 드론 공항을 고안했다. 일련의 우주 프로젝트를 거치며 건축계가 풀어가야 할 과제를 발견하기도 했나?

두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주력한 부분은 지구에서 건설자재를 운반하는 비용을 줄이고 현지 재료를 토대로 구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행성 표면에 떠다니는 먼지와 현지 자원을 재료 삼아 3D 프린팅을 기반으로 달과 화성에서 재료 효율성이 높은 자재를 즉시 만들어 활용할 수 있었다. 맨체스터 매기 암센터(Maggie’s Cancer Caring Centres) 같은 최근 프로젝트 역시 우주에서 시작된 구조물 형태 연구를 발전시켜 실제 디자인 단계에 적용한 사례다. 이처럼 오늘날 건축가 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는 바로 재료의 혁신일 것이다. 건축의 전 과정에서 건물은 더 이상 최종 단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완공된 이후 재생으로 나아가는 순환 주기의 한 단계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주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도 독성을 띠지 않는, 생분해되는 재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의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건축은 본질적으로 변혁적 행위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사무 공간부터 고층 건물, 공항 터미널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건물 유형과 인프라, 나아가 도시를 재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당대의 기술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뿌리 깊은 전통과 관습에 도전해 왔다. 이 혁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태도다. 많은 경 우, 과거를 살피는 과정에서 미래로 내딛는 발걸음을 위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지 않나. 개별 건물을 짓는 일부터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상상하는 모든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우리는 언제나 현재의 필요를 위해 과거를 인식하면서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는 디자인을 해나간다.

건축을 통해 매 순간 혁신을 꿈꾼 건축가로서, 긴 시간 당신을 지탱해준 신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설계와 제작 단계 사이의 연결성을 깊이 신뢰한다. 제작 방법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구현해낼 수 없다. 스스로, 그리고 동료들에게 언제나 유행을 따르기보단 건설 현장과 공장을 발로 뛰며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자세를 잃지 말라고 권해왔다. 나는 여전히 건축자재에서 시작해 실제 건축물을 구현해내는 현장의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