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곁에서 살아가는 5명의 필자가 지금 가장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왔다. 미술을 향유할 때 일어나는 일들, 작품을 능동적으로 감상하는 방법, 주목해야 할 아시아의 신진 작가까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예술적 화두들.

고독에서 공유로, 요즘 컬렉터 관찰 일지

writer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공동대표)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은밀한 취미였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필자는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하진 않았다. 하지만 10년 전 미술 잡지와 여러 매체들만 보더라도 ‘컬렉터 인터뷰’ 하면 계단이 있는 멋진 복층을 가진, 40대 이상의 컬렉터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컬렉터 인터뷰를 찾아보면 연령대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이에 맞춰 컬렉터의 뒷배경, 그러니까 집의 풍경도 좀 달라졌다. 으리으리한 주택이나 층고 높은 집이 아닌, 자신의 아기자기한 방, 집 꾸미기 콘텐츠에 나올 법한 평범한 30대의 원룸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의 크기도 다양하고, 소품과 작은 조각들도 눈에 띈다. 어쩌면 과거에도 이런 젊은 컬렉터들이 존재했을지 모른다. SNS가 탄생하고 발전하며 컬렉팅한 작품을 공유하는 것이 익숙한 시대로 진입하면서 존재하던 것들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닐까. 요즘 컬렉터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공유하고 공개하는 것에 익숙하다. 최근 필자 주변 지인들의 컬렉팅 생활을 지켜본 몇 가지 단상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컬렉팅 계정 TTRC(@art.travel.to.romantis)를 운영 중인 30대 컬렉터의 공간.

컬렉팅용 SNS를 통한 교류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을 활용하다 보면 인스타그램 친구, ‘인친’이 가끔 보는 진짜 친구들보다 친밀하게 느껴지곤 한다. 필자 또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은 예술 애호가, 컬렉터들과 일상을 공유한다. 그 중 내 나이 또래로 추정되는 컬렉터 한 명은 총 2개의 계정을 운영한다. 하나는 본업 계정, 또 다른 하나는 컬렉팅한 작품을 올리는 계정이다. 이처럼 2030 컬렉터 중 계정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경우가 꽤 있다. 자신만의 온라인 아카이브를 위해서도 있고, 해당 계정으로 관심 있는 예술가와 갤러리를 팔로해두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신문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최근 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최근 컬렉션을 살펴보니 ‘여성 작가’의 비중이 많다는 것.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컬렉션들이 지닌 모종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왜 그런 교집합이 생겨났는지 생각해보는 건 컬렉팅을 해본 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기쁨일 것이다. 박예림, 장파, 김민희 등 필자 또한 흥미롭게 전시를 보러 다니던 작가들의 작품이 방 안 곳곳에 보이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특히 최근 컬렉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장파 작가의 작품은 화면을 한참이나 바라볼 만큼 매력적이었다.

2030 컬렉터 커뮤니티

우연히 한 인스타그램 계정이 추천으로 떴다. 3년간 컬렉팅을 통해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마이크로 컬렉터스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첫 게시물 속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옆자리에서, 지하철 옆 칸에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영 컬렉터를 만난 적 있나요? 평범한 영 컬렉터들의 이야기, 곧 시작됩니다.” 이처럼 컬렉팅을 하다 보면 ‘설마 저 사람도?’ 하는, 기분 좋은 생각이 머리를 맴돌 때가 있다. 그러던 중 내 또래들이 이끄는 컬렉터 계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후 이 계정에 멤버들의 소개가 차근차근 올라왔다. 도시 계획가이자 6년차 컬렉터 H의 컬렉션이 흥미로웠다. 6년 동안 40여 점을 소장한 그의 이야기에서 가장 공감이 간 점은 ‘작품으로 동시대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는 것. 영 컬렉터가 영 아티스트에게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IT마케터이자 대학원생 컬렉터 S의 이야기와 추수 작가의 작품 등 그만의 취향이 돋보이는 컬렉션도 인상깊었다. 브랜드 디렉터 S의 컬렉션은 과거 유럽 탐험가들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집품으로 채운 ‘경이의 방’이자 현재 미술관의 전신이 되는 ‘분더캄머’라는 용어로 정체성을 표현해 또 다른 자극을 줬다.

‘덕업일치’의 컬렉팅

예술을 담은 한 그릇의 요리라는 슬로건으로 미술과 요리를 연결해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는 브랜드 ‘마벨 메종’. 이곳을 찾아갔다가 최근 미술 신에서 주목받고 있는 전현선 작가의 대형 작업을 발견했다. 놀라서 물었다. “이 작품 언제, 어디서 컬렉팅 하셨어요?”

2019년 갤러리에서 근무했을 당시 구매했다는 대표의 이야기에 그의 취향이 더 궁금해졌다. 스튜디오 구석구석에도 작품이 많았다. 기술과 미디어 아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고휘 작가의 작업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스라히 달리기를 하는 듯한 최기창 작가의 작품도 눈에 들어왔다. 그릇과 꽃병도 하나하나 예술가의 아트피스였다. 미술을 전공한 대표가 본인이 좋아하는 예술을 사업과 접목하기도, 자신의 집을 채우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덕업일치’의 삶이란 이런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가 수집할 다음 작품들이 궁금해 24시간이면 사라질 스토리마저도 꼼꼼히 확인하게 된다.

컬렉터들은 SNS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타인의 취향은 새로운 영감이자 자극이 되기도, 또 잠시 멈춰있던 컬렉팅 라이프에 활력이 되기도 한다. 전시 초대장이 인스타그램 DM으로 오거나 작가와 컬렉터가 함께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요즘. 많은 미술 행사 관련 계정 또한 SNS를 적극 활용하며 컬렉터와 관람객 사이의 ‘티키타카’를 이어간다. 지난 8월 말 키아프 서울 공식 인스타그램(@kiaf_official)에 올라온 릴스가 눈에 들어온다. 짧은 영상 속, 2주 앞으로 다가온 키아프 서울 2024에 대한 기대감을 재미있게 표현한 릴스에 많은 이들이 댓글로 반응했다. 은밀한 취미였던 미술품 수집이 ‘공유하고 싶은’ 나만의 취미로 바뀌면서 미술과 관계 맺은 이들의 신선한 소통을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