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진가 줄리아 가트는 열다섯 살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부모님과 네 동생들의 일상 속 순간을 포착했다. 안전하고도 자유로운 가정에서 저마다의 관심사를 탐구하며 자란 다섯 형제자매가 스스로 증명하는 아이들의 주체성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촬영한 가족사진을 모아 프로젝트 ‘Khamsa khamsa khamsa’를 완성했다. 제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Khamsa’는 아랍어로 숫자 ‘5’를 뜻한다. 문화적 의미로는 손바닥 모양의 부적을 가리키며 보호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단어 를 세 번 반복하면 행복을 빌어준다는 말도 구전되어왔다. 나와 4명의 동생들, 즉 다섯 형제자매가 가정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랐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제목이다. 이는 현재 우리 가족의 채팅방 이름이기도 하다.(웃음)
어린 나이에 일찍이 카메라를 들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진에 관심이 생긴 계기는 무엇이었나?
부모님이 우리 다섯 형제자매를 ‘언스쿨링(unschooling)’이라는 교육철학을 기반으로 키워주셨다. 언스쿨링은 학습자가 스스로 선택한 활동을 학습의 주요한 방법으로 삼는다. 그 덕분에 나와 동생들은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이 자연스레 사진을 향한 열정으로 이어져 열세 살 때 사진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따스한 햇살이 매력적인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한 게 프로젝트의 시작점이다. 이는 내가 사진가로서 성장해온 과정인 동시에 동생들에게 부치는 사랑의 편지이자 부모님에게 바치는 헌사다.
일상의 여러 대상 중에서도 가족을 피사체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일상 속 좋은 순간에 감사하는 경험을 늘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래서 사진을 통해 우리 가족의 ‘행복 모먼트’를 기억하며 기리고 싶었다. 화가인 어머니와 현대무용 안무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와 동생들은 창의력이 풍부하고, 개성도 뚜렷했다.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마치 내가 꼬마 인류학자가 된 양 그들을 자세히 살피게 되더라. 아이의 성장기는 보통 부모에 의해 기록되는데, 나 스스로 아이들 세계의 참여자이자 관찰자가 된 셈이다. 그 덕분에 ‘친밀감’이 내 작업의 주된 정서가 되었다.
친밀한 시선을 통해 동생들의 어떤 모습을 포착하고자 했나?
원래 이 사진들을 프로젝트로 엮을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특정한 모습을 포착하려 하진 않았다. 그보다는 빠르게 변하는 네 동생의 순간들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넘어서는 의미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창작 과정은 나와 동생들의 공동 경험이 되어 우리의 유대감을 단단히 다져주었다.
유년을 함께 보낸 다섯 형제자매가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고 들었다.
한 지붕 아래 살던 우리는 현재 따로 지낸다. 마르세유, 몽펠리에, 파리 등 사는 곳은 저마다 다르지만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릴 땐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지금은 서로의 삶에 계속 관여하며 자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1장이 회상과 향수라면, 2장은 성인이 된 우리가 써가는 삶의 기록이 될 것이다.
스스로 삶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타인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이해한 뒤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그 방법을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프로젝트 소개 글에 당신의 어머니가 남긴 문장이 인상 깊다. “네 사진 아카이브는 우리 가족이 한때 살았던, 꿈이라고 오해받기 쉬운 세계를 현실로 만든다.”
이 문장에서 ‘세계’란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신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마치 정원을 가꾸듯, 우리가 안전하면서도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세계를 꾸려주셨다. 그 안에서 나와 동생들은 사진가, 기자, 판매원, 가수 등 무엇이든 되어보는 놀이를 하며 저마다 자기만의 관심사를 탐구했다. 그게 우리가 각자 사회에서 해나갈 역할을 선택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며 얻은 삶의 교훈이 있다면?
주어진 규범에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것. 이러한 태도는 내 호기심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들었고,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세상이 지닌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키워줬다. 삶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지속적인 협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스로 삶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타인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이해한 뒤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그 방법을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프로젝트에도 그 교훈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사진을 마주한 사람들이 무엇을 새롭게 느낄 수 있기를 바라나?
한 아이가 아이들을 위해 탄생시킨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의 주체성을 인식하자는 ‘조용한 요구(quiet demand)’를 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젊은 창의력’이 지닌 힘을 감지할 수 있었으면 한다. 프란츠 카프카도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나. “청춘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행복하다. 아름다움을 계속 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 사진으로 보존된 내 유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잠시 돌아볼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당신 가족이 공유하는 가장 낭만적인 기억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4년 전,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이 봉쇄되었을 때 떨어져 지내던 가족 구성원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섯 형제자매와 부모님, 고양이 일곱 마리, 강아지 한 마리가 오랜만에 한 집에서 두 달간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때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더라. 투닥거리는 장난과 시답잖은 농담, 익숙한 습관들이 유대감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거다. 돌이켜보니 그 경험이 우리를 충전해준 것 같다. 요즘도 가족과 함께할 때마다 당시의 에너지를 생생하게 느낀다. 함께 공유하고 추억하는 서사가 마음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