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의 역동성을 탐구하며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플랫폼, 키아프 하이라이트(Kiaf HIGHLIGHTS)가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 10인을 세미 파이널 리스트로 선정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세상을 응시하며 구축한 이들의 작품 세계는 새로움과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Kang Cheolgyu 강철규

ARARIO GALLERY 아라리오갤러리

강철규, ‘적(Enemy)’, Oil on canvas, 145.5×227cm, 2023
강철규, ‘큰 놈(Big One)’, Oil on canvas, 160×130.3cm, 2023

침엽수가 높이 솟아 있는 서늘한 숲. 허공에 떠 있는 매끈하고 커다란 검은 구를 향해 한 남자가 창을 겨누고 있다. 강철규가 자아낸 낯설고 비현실적인 풍경에는 강박, 불안, 냉소와 같은 감정이 서려 있는 듯하다. 그는 일상에서 경험한 사건이나 내밀한 마음을 상징적인 도상으로 표현하며, 화면 속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드러낸다. 기괴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작품 분위기에 대해 작가는 “내면적인 무형의 것을 형상으로 드러내다 보니 기이한 모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말한다. “언제나 나는 누구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왔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존재론적 탐구와 이를 재현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 겪은 일과 그 심리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더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

Jochen Pankrath 요한 판크라트

BODE GALERIE 보데 갤러리

Jochen Pankrath, ‘Daswissen’, acrylundölauflwd, 120×80cm, 2024

요한 판크라트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각하는 일이다. 그는 미술사를 바탕으로 인물, 풍경 등의 전통적인 소재를 재해석하며 현대사회를 탐구한다. 그의 대표작 ‘관찰’은 타일로 구성한 초상화를 통해 수천 년간 인간이 쌓아 올린 철학과 급격히 발달한 AI의 대비를 표현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림은 화가의 상상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묘사한다는 건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 그리고 손을 사용하는 것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호기심을 가지는 것, 의식을 가지는 것. 그게 창의력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과연 기계가 창의적일 수 있을까?” 그는 다양성을 잃고 평준화되어 가는 사회의 일면을 꼬집으며 회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Betty Muffler 베티 머플러

JAN MURPHY GALLERY 얀 머피 갤러리

Betty Muffler, ‘Ngangkari Ngura – Healing Country 185_24’, Acrylic on linen, 167×152cm, 2024

베티 머플러는 호주 원주민 출신으로 남호주의 외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냉카리(Ngangkari, 지역민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살피는 전통 치료사)’라는 그의 또 다른 정체성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냉카리로서 자신이 느끼는 점과 그 위치가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그림에 담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냉카리는 혼을 볼 수 있으며 영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작업을 할 때 혼을 담아내기에 결국 본인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고 말한다. 베티 머플러의 작품에는 호주 원주민 문화와 지역적인 상징이 진하게 녹아 있다. 원주민의 삶과 문화가 주목받고 있는 미술계의 동향 속에서도 그의 작품은 유독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Kim Xian 김시안

ARTSIDE GALLERY 아트사이드 갤러리

김시안, ‘정물 314’, Acrylic on canvas, 130×390cm, 2024
Processed with VSCO with b1 preset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김시안이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법이다. 김시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사물을 매끈하게 변형해 그린다. 제소와 모래 같은 두껍고 거친 표면 위에 에어브러시의 부드러운 질감을 더해 시각적 대비를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물체가 지니고 있던 현실의 복잡함을 해체한다. 플라스틱 같은 질감을 지닌 김시안의 정물에서는 어떠한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관념에서 벗어난, 가장 순수하고 솔직한 ‘무(無)’의 상태만이 존재하게 된다. 작가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두 나라의 문화를 함께 접하며 얻게 된 독특한 시각을 바탕으로, 대상의 본질을 응시하며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간다.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는 모두가 잠든 시간, 박물관에서 유물들이 깨어나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황을 그린 작품을 선보였던 지난 개인전의 이야기를 확장한 작품을 선보인다.

Han Jin 한진

GALLERY SP 갤러리 SP

한진, ‘밤결 속에 머물다. Op.1’, Pencil on paper, 31.8×41cm, 2014

묵음(默音). 철자상 표기되어 있지만 발음되지 않는 것. 존재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 한진은 이러한 것들에 오래도록 관심을 두며 그저 흘러갈 법한 현상과 감각, 문학이나 음악에 녹아 있는 묵음 같은 존재를 그림 안에 붙잡아왔다. 작가는 키아프 서울에서 ‘밤은 아직 기다려야 하고 낮은 이미 아니다 Op.2’ 등의 추상 회화를 선보인다. 그는 “빛은 박명(薄明)의 순간까지 여명이 될 수도 혹은 석양이 될 수도 있는 상태로 존재하기에, 빛이 지닌 이중의 속성으로 형성된 이미지를 연작으로 작업했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며 매 순간 다가오는 다양한 존재에 대해 숙고한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 과거의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회고하고, 음악, 문학 등을 통해 느껴온 여러 감정을 경유하며 작업 세계를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