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진가 가와우치 린코는 ‘지금, 여기’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 구절과 어울리는 본인의 사진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엮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쉽게 변하는 존재들의 찰나를 섬세하게 담아낸 장면이 ‘살아 있다’는 감각의 힘을 넌지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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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and Now’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우연한 기회로 뮤지션 하라다 이쿠코(Harada Ikuko)의 곡 ‘Here and Now’를 들은 적이 있다. 0~91세 사람들의 목소리, 호흡과 심장 소리, 가사를 쓴 시인 다니카와 타로(Tanikawa Shuntaro)의 낭독 등으로 이뤄진 음악이 11분 동안 펼쳐졌다. 한 편의 서사시 같은 그 곡을 방 안에서 듣고 있으니 지구의 박동이 느껴지는 듯했고, 내가 우주와 연결된 것 같기도 했다. 이후 하라다의 제안을 받아 다니카와와 함께 사진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고, 가사에 담긴 시 구절을 읽으면서 이와 어울릴 만한 이미지를 내 사진 아카이브에서 고르고 엮으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프로젝트에 포함할 사진들을 선택하며 어떤 생각을 했나?

예전에 찍어놓은 사진이 프로젝트에 딱 들어맞을 때, ‘과거의 내가 이 작업을 위해 셔터를 누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간을 초월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한편으론 사진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게 각 사진의 촬영 시기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법한 장면들이 다수 포착되어 있다.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 사진가에게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주변 환경을 면밀히 살피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촬영하다 보면 무언가를 감지하곤 한다.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아름답다는 감탄만 하게 될 때도 있다.

자연과 동식물, 어린이가 당신의 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대상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멈출 수 없고, 모든 것이 매 순간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내 작업의 동기가 되어준다. 무언가가 동일한 형태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건 취약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불완전한 것들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유약한 피사체를 섬세하게 담아낸 ‘Here and Now’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라나?

사진을 보며 각자의 상상을 펼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특정한 시선이나 감상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다만 프로젝트의 제목처럼, 우리가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감각만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모든 순간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그렇기에 고귀한 것일 테니 말이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저마다 본인을 거대한 존재로 여기는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의 많은 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오롯이 직면하고 인식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할 때, 우리가 오만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아 걱정된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인간이 지녀야 할 겸손한 마음을 심어줄 거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최근에 발견한 ‘빛나는 장면’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오늘 아침에 마주한 장면이 떠오른다. 가을 햇살이 우리 집 테라스로 따스하게 스며들며 나의 반려 고양이를 비춰주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더라. 아름다움이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지 않나. 이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계속 카메라를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감각만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모든 순간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그렇기에 고귀한 것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