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더 쉬운 선택지일 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일 수 있을까. 여기, 5명의 젊은 여성 소설가가 ‘함께함’에 대한 짧은 소설을 보내왔다. 나라는 공고한 벽을 허물 때 우연히 마주하는 장면, 누군가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온기, 서로를 돌보며 확장되는 삶. 이제 우리는 안다. 함께함이 동반하는 수고로움이 때때로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나를 구원하는 건 결국 우리라는 것을.

<당연한 말>

김화진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주에 대하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장편소설 <동경>이 있다. 제47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강이명은 심야 라디오 디제이다. 밤 12시부터 2시까지, 매일매일. 가끔 쉬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늘 그 시간에 나온다. 강이명은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주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많았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일을 하려고 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만들지 않는 시기에는 동료들의 작업을 돕거나 아이들에게 작사 작곡을 가르쳤다. 강이명은 눈에 띄게 잘생기지도 않았고 키가 크지도 않으며 심지어 목소리조차 크지 않은 음악가다. 그런 까닭에 크게 유명하지 않으며 음악을 하는 그의 주변에 그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이 많다. 라디오국에서 왜 강이명에게 디제이를 맡아달라고 했는지 그는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기뻤고, 그는 라디오를 진행하기 위해 그때까지 하던 몇 가지 일을 그만두었다. 그가 이 직업을 갖게 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강이명은 라디오 덕분에 매주 수요일에는 낯선 사람을 만난다. ‘수요 초대석’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한다는 취지의 코너다. 쇼핑몰 MD, 래퍼, 화가, 파티시에, 서점 주인, 심리학 박사, 영어 선생님, 패션 유튜버, 잡지 기자, 예술 서적 편집자 등. 라디오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리라고 상상하지 못한 직군이 많다. 강이명은 언제나 긴장하고 걱정하지만 대부분 실수 없이 그들과의 대화를 잘해낸다. 그들은 하는 일도 성격도 말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강이명이 그 코너를 통해 만난 사람 중 6개월째 매주 만나게 된 사람도 있다. 그것은 양시운이다. 양시운은 ‘수요 초대석’에 출연했던 시인이다. 첫 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그 코너에 나왔다. 그를 만나기 전에 읽어야지 하고 사뒀던 시집을 강이명은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다. 말이 잘못 끼워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을 잘못 끼우는 듯한 시인 양시운은 전체적으로 작았다. 마른 몸에 얼굴이 작아서 손으로 턱을 괴었을 때 손가락이 무척 길어 보였다. 밍밍하고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긴장이 되었는데, 막상 생방송이 시작되고 질문을 건네자 대답은 성실히 잘했다. 강이명에게는 그것이 의외였다. 무조건 예, 아니오로 대답할 관상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시에 대해 시집에 대해 천천히 줄줄이 설명해주는 양시운이 대견할 정도였다.

양시운은 출연 이후 작가와 피디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너무 재밌는 캐릭터 아니에요? 작가는 말했다. 아, 예… 그러네요…. 강이명은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양시운은 금요일에 강이명과 함께 생방송 중 도착한 사연과 신청곡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시가 될 만한 문장을 수집한다는 콘셉트의 ‘금요 시작 연습’ 코너의 고정 게스트가 되었다. 시운 시인님, 하고 부르는 것은 강이명이 일주일간 발음하는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이름이 왜 저래… 왜 하필 시인이야… 라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양시운은 이름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내뱉는 말들도 여차하면 강이명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시가 될지도 모를 문장을 기록한다는 소개가 나가자 청취자들이 보내는 문장은 좀 따스한 쪽으로 치우쳤는데, 그때마다 양시운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따뜻한 거 금지. 그런 말을 진심으로 내뱉었다. 강이명이 하하 웃으며 시는 따뜻하고 위로를 주는 장르 아닙니까, 하고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지만 시가 제일 성격 안 좋을걸요? 하고 반문하는 양시운 때문에 머쓱한 채로 다음 사연으로 넘어가야 했다.

양시운을 알게 된 6개월 동안 강이명은 뭐 이런 사람이 있지… 하는 혼잣말을 스님이 염주 굴리듯 자주 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는 다짐도 크리스천만큼 자주 했다. 양시운은 왜 이렇게 거슬릴까? 생각해보자면 가늠이 안되는 것이 거슬렸다. 매사 심드렁해 보이는 얼굴로 코너 준비는 열심히 해 온다. 그런데 또 사연에서 조금만 당연한 소리를 하면 딴죽을 걸기 시작한다. 최근 가장 어처구니없는 양시운과의 대화는 이러했다. 유독 힘든 날이었다는 사연을 읽고 강이명은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건넸고, 마무리할 즈음 참, 제가 꼭 안아드리고 싶네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양시운은 강이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요?”

“저는 ‘꼭 안아주고 싶었다’를 위로로 쓰는 걸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

강이명은 헛웃음이 났다. 누가 물어봤냐고… 그 말을 꾹 참고, 좋은 말로 아 그러시구나, 사람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강이명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그… 언제까지 그런 말 하실 거예요?”

“이게 어쩔 수가 없이… 생각이 그렇게 들어서….”

“사람이 왜 그래요?”

“저는, 좀 당연한 말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당연하게 막 쓰이는 말….”

“진짜 꼬였네요.”

“좀 그런 것 같아요.

강이명이 애써 표정 관리를 한 것과 다르게 양시운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덤덤했다. 아오, 열받아… 상상 속의 샌드백을 퍽퍽 쳐가며 노래가 나가는 사이 마음을 다잡자, 그제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고는 아니지만 실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너무했나, 싶어 양시운의 옆얼굴과 실시간으로 도착하는 문자를 번갈아봤다. 의외로 반응은 없거나 좋았다. 양시운의 반응은 없었고, 청취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두 분 점점 친해지는 것 같아요. 그 문자를 발견하고 강이명은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친해지긴 누가요. 한 시간이 억겁 같습니다.

그러니 강이명이 혼자서 음악을 만들며 아주 오랜만에 하게 된 소극장 단독 공연에 양시운을 초대한 것은 대단히 내켜서는 아니었다. 공교롭게 이 시기에 함께하게 되어서, 그게 전부였다. 라디오 팀 모두를 초대하는데 고정 게스트를 초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 의미는 없는 것이지만, 초대를 하면서도 양시운의 반응이 못내 신경 쓰였다. 피디를 통해 초대권을 건네받을 때에도 양시운의 표정은 변함없겠지.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지만 당연한 것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감사의 표정과 표현을 건네는 것도 그런 걸 왜? 진심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겠지.

양시운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모르는데도 초대권을 건네준 이후 강이명은 그런 걸 생각했다. 그 양반이 크게 고마워하거나 좋아하진 않으리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이 들자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아, 그래도 좋았으면 좋겠는데. 좋으면 좋다고 할 거 아니야… 아무리 당연해도… 라디오가 끝난 새벽 2시에 다시 공연 준비를 하러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 푸르고 별이 총총한 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양시운이 무대 위의 내 모습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상상했다. 그러다가 곧 아, 아니네, 초대권만 받았지 안 올지도 모르네, 하는 생각에 이르러 그 모든 생각을 날려버리고 싶어 콧노래로 흠흠흠, 공연에서 부를 곡들을 불러보았다.

오랜만에 서는 소극장은 편안했다. 더 자주 할 수 있으면 좋았을걸, 강이명은 생각했다. 객석과의 거리가 가깝고 어둡지만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어른어른 보였다. 부르는 노래들은 워낙 많이 연습해서, 노래를 하면서도 시냇물처럼 머리에 다른 생각들이 졸졸 흘러갔다. 이를테면 이런 곳이 참 좋다는 생각. 듣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곳. 그렇게 생각한 동시에 아, 또 그렇게만 말하면 라디오를 빼먹게 되잖아, 함께 있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다는 걸 아는 것도 좋은데…. 그렇게 서둘러 자신의 생각을 고쳤는데 그럴 때 강이명은 자신이 양시운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할 말을 다 해놓고 꼭 마지막에 아 아니다, 제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하고 뒤집는 양시운. 뭐… 일주일에 한 번씩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점점 섞일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객석을 보았다. 가운데 즈음 앉아 있는 양시운이 보였다. 좋아… 하는 것 같은데?

강이명의 노래들은 크게 빠르거나 신나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는 종류는 아니었지만, 가끔 지루하게 들리는 곡이 있지만 그래도 공연은 산뜻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잘도 흘러갔다. 강이명의 머릿속 시냇물 같은 생각처럼 노래가 구불구불 흘러가고 그러는 와중에 박수와 웃음과 환호가 시냇가의 자갈처럼 놓였다. 앙코르까지 포함해 두 시간이 흐른 뒤, 강이명은 대기실로 돌아와 물을 마시고 선풍기를 쐬었다. 바깥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잦아들고 강이명의 대기실에 라디오 팀이 찾아왔다. 거기엔 양시운도 있었다. 6개월 동안 보지 못한 어딘지 쑥스러운 동시에 들뜬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강이명은 쭈뼛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양시운에게 먼저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초대해주셔서….”

“공연은 잘 봤어요?”

“네. 음악 듣는 거… 좋네요.”

“다행이네요.”

“베이스를 배우고 싶어졌어요.”

“베이스가 좋던데요.”

“저는 기타 쳤는데?”

“아, 진짜….”

“전부 좋았어요. 노래 전부.”

“좋았다니 좋네요.”

“좋으면 좋죠.”

“웬일이에요. 이런 말 싫어하지 않나.”

“그러게요.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할 땐 해야죠.”

“할 땐 좀 해요.”

“네.”

또렷하게 기억하는 공연의 장면은 그것뿐이 아니지만, 강이명에게 그 장면은 유독 슴슴하면서도 짜릿하게 남는다. 사람들이 그냥저냥 하는 말, 대충 하거나 당연하게 하는 말을 넌더리 내던 양시운이 순순히 하던 좋으니까 좋네요, 같은 말이 일 대 영, 같은 말처럼 들려서다. 그러는 동시에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고 짜릿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 바로 양시운이라는 게, 당연한 말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그 말을 하니까 좋았다는 게 강이명을 또 한번 맥 빠지게 하는데 그런 연유로 일 대 일. 강이명은 양시운과 함께할 다음 주, 다음 6개월이 재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