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와 기억을 이야기하는 설치미술가 서도호. 오는 8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사상 최대 개인전이 열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나는 서도호

지난 3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 전이 막을 내리고, 한국 설치미술가 서도호가 그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전시명은 작가의 이름을 그대로 내건 ‘서도호’인데요. 그의 초기작부터 미공개 최신작, 평생 붙들어 온 드로잉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전시는, 그가 직접 “생애를 정리할 타이밍”이라고 말한 만큼 대규모 회고의 자리가 될 전망입니다.

이번 전시는 집과 기억, 이주와 정체성,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오랜 질문을 따라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집은 물리적으로 한곳에 머물기 마련이지만, 서도호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데요. 그의 집은 접히고, 옮겨지고, 펼쳐지고 다시 세워집니다. 서울에서 뉴욕, 런던까지 그가 작업을 이어 온 공간들은 반투명한 천을 입고 새로운 집으로 재탄생하죠. 서도호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가 어떻게 우리를 만들고, 또 떠난 뒤에는 어떻게 남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건축과 공간, 신체, 기억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집을 이동 가능한 기억의 구조로 확장하는 것이죠.

이주의 기억으로 지어 올린 집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풀어낸 서도호의 작업은 세계 미술계에서도 꾸준히 주목 받아 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죠.

지난해에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대규모 개인전 ‘서도호: 집을 거닐다(Do Ho Suh: Walk the House)’를 열며 30여 년에 걸친 그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기도 했습니다. 해체와 운반, 재조립이 가능한 한옥에서 착안된 제목으로, 집을 해체해 다른 곳으로 옮긴 뒤 다시 세우는 과정을 아울러 ‘집을 걷는다’고 표현한 것이죠. 서도호는 전시에서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도시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하며 ‘이동하는 집’의 개념을 제안했는데요. 서도호는 오래된 한옥의 이동 방식을 현대의 이주 경험으로 확장하며, 집을 머무는 장소가 아닌 삶을 따라 움직이는 기억으로 풀어냈습니다.

천으로 지은 집의 탄생

서도호의 작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천입니다. 그가 짓는 집의 벽은 벽돌도, 콘크리트도 아닌 얇고 투명한 천이죠. 그의 손에서 탄생하는 집은 세심하고 정교하면서도 동시에 비어 있습니다. 벽은 빛을 통과시키고, 문틀은 실루엣처럼 남으며 공간은 고정되지 않은 채 흔들리죠. 그가 천을 택한 것은 단지 시각적인 효과만을 위한 것이 아닌데요. 손에 잡히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기억의 성질을 가장 닮은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집은 견고한 건축물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감각과 기억을 담아냅니다

이주의 궤도를 연결하는 집

1999년 작 <서울집/L.A집>은 그의 작업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쳐낸 출발점이 된 작품입니다. 서울 성북동의 전통 한옥을 반투명한 옥색 천으로 재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 놓아두었는데요. 이때부터 그에게 집은 더 이상 한곳에 머무는 건축이 아닌, 접어 들고 다니며 삶을 따라 이동하는 기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죠. 이후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에서 선보인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도 뻬놓을 수 없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머물렀던 3층 주택 안에 서울 한옥의 기억을 겹쳐 놓으며,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공식 소개 이미지로 공개되며 많은 관심을 모은 대형 작품, <Nest/s>는 마치 여러 둥지가 연결된 듯한 형태가 특징입니다. 이는 서도호가 살아온 여러 집의 방과 복도, 문을 하나의 긴 통로로 엮어낸 작품인데요. 관람객은 작품 밖에서 바라보는 대신 그 안을 직접 걸으며 방과 복도, 문이 이어지는 공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얇은 천 사이로 빛과 공기가 스며들며 안팎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지고, 어느새 작가의 기억 속을 걷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내죠.

이동하는 삶의 감각을 일깨우는 전시

서도호는 이주를 거창한 방법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사람이 살아온 방과 복도, 문턱과 스위치처럼 아주 사소한 공간의 흔적을 붙잡는데요. 낯선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경험이 늘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는 유학과 취업, 이사 등 모두 크고 작은 이동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서도호의 집은 이러한 이동 끝에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기억을 보여주죠.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집을 걷다 보면, 결국 관람객은 자신의 집과 기억을 함께 떠올리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