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에 부는 AI 바람이 40여 년 정통성을 지켜온 대하드라마의 문턱까지 넘어섰습니다.

© KBS 한국방송 유튜브

40년 역사의 대하드라마, ‘문무’로 새 장을 열다!

1981년 ‘대명’을 시작으로 40년 넘게 이어져 온 KBS의 대하드라마. 시대극 하나가 방영될 때마다 안방극장을 뒤흔들었던 이 시리즈는, 어느새 단순한 방송 프로그램을 넘어 우리의 역사적 의식을 형성해 온 공영 미디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이 90년대와 2000년대 초 시청률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도, ‘정도전’과 ‘태종 이방원’, ‘고려 거란 전쟁’이 꾸준히 정통 사극의 계보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그 힘 덕분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를 오는 11월 28일 방영을 앞둔 35번째 정통 대하드라마 ‘문무’가 채웁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의 야욕까지 물리치는 과정을, 문무왕(이현욱)의 결단과 외교적 승부, 화합의 리더십으로 풀어내는 작품인데요. 연개소문 역의 장혁, 김춘추 역의 김강우, 김유신 역의 박성웅까지 화려한 캐스팅에 몽골 해외 로케이션, 그리고 AI 기술까지 더해지며 방영 전부터 뜨거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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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전쟁터를 채우는 AI 프로덕션 출범

지난 3일, KBS의 생성형 AI 기반 방송 제작 전문 허브 ‘AI 프로덕션’ 개소식이 열렸습니다.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컨설팅, 품질관리, 교육까지 AI 활용을 지원하는 이 공간은 지난달 도입된 자체 AI 포털 ‘카이로스’와 짝을 이루는데요. 온라인에서는 카이로스가 업무 전반을 지원하고, 오프라인에서는 AI 프로덕션이 제작 현장을 지원하는 구조입니다. 이곳의 첫 주요 적용 사례로 꼽히는 것이 바로 ‘문무’. 신라와 당의 운명을 가른 매소성·기벌포 전투 등 대규모 전쟁 장면의 군중 표현을 AI로 보강하고, 화재나 위험한 액션 장면은 사전 시각화 작업에 AI를 활용할 예정입니다. 실제 촬영이 어렵거나 위험한 장면을 대체함으로써 촬영 안전성과 제작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죠. 40년 넘게 정통성을 지켜온 사극의 장르에 가장 최신의 기술이 스며든다는 것. 가장 클래식한 것과 가장 트렌디한 것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이 지점이 AI가 그려낼 다음 장면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단막극 ‘러브 : 트랙-늑대가 사라진 밤에’ 속 AI로 제작된 늑대. © KBS 드라마 유튜브
드라마 ‘김부장’ 속 AI로 제작된 소지섭의 얼굴. © SBS 스케치 유튜브

배우의 얼굴부터 늑대까지, AI가 대신 그려낸 순간들

‘문무’에 앞서 AI를 활용한 시도는 사실 이미 방송가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지난해 방영된 단막극 ‘러브 : 트랙-늑대가 사라진 밤에’는 야생 늑대를 섭외하는 대신, 개를 촬영한 영상에 AI를 입혀 늑대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을 택했는데요. 실제 야생동물 촬영 없이도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지킬 수 있었던 이 실험이, ‘문무’로 이어지는 기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더 파격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달 종영한 SBS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국내 상업 드라마 최초로 주요 장면 전체를 100% AI로 완성했는데요. 특수요원 김부장(소지섭)이 터널에서 추격전을 벌이고 다리 위에서 추락하는 3분가량의 장면이 실제 촬영 없이 AI 플랫폼만으로 구현됐습니다. 대형 폭파와 차량 전복, 수중 침수까지 이어지는 액션을 배우의 얼굴과 표정 일관성을 유지하며 완성해낸 것입니다. 이렇게 몇 해 전만 해도 CG로 몇 달을 매달려야 했던 장면들이 이제는 AI 플랫폼 안에서 훨씬 짧은 시간에 완성되고 있습니다. 배우가 위험한 액션을 직접 소화하지 않아도,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세트를 짓지 않아도 되는 이 변화는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고 있죠. 늑대 한 마리부터 사람의 세밀한 표정까지, AI가 대신 그려낼 수 있는 영역은 점점 더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 KBS 한국방송 유튜브

기술과 창작이 함께 그려낼 다음 페이지

제작비 부담이나 촬영 안전 문제로 그동안 포기해야 했던 장면들이 이제는 하나둘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연출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넓어지고 있는 셈인데요. 물론 기술이 배우의 미세한 감정선이나 현장의 생생한 질감까지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스케일과 스펙터클의 영역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실제 전쟁 규모의 몇 배에 달하는 대군을 스크린에 세우는 일도, 세트로는 구현하기 힘든 광활한 전장을 만들어내는 일도 이제는 예산과 안전에 발목 잡히지 않게 됐으니까요. 신라와 당나라가 맞붙던 7세기의 전쟁터가 AI라는 최신 기술의 손을 빌려 이전보다 훨씬 웅장하고 화려하게 되살아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40여 년간 정통성을 지켜온 대하드라마가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얼굴로 안방을 찾아올지, 그 첫 장면이 더욱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