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마리봇의 요점 정리
  • 배우 양자경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15년 만에 부산을 방문합니다.
  • 양자경은 강렬한 액션과 주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홍콩을 넘어 할리우드 중심까지 진출했습니다.
  • 영화제 기간에는 양자경이 직접 고른 대표작 세 편과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을 상영하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우 양자경. 그의 연기 여정을 짚어봤습니다.

15년 만에 다시 찾는 부산

동서양 영화계를 오가며 여성 캐릭터의 가능성을 넓혀 온 배우 양자경(Michelle Yeoh)이 올가을 부산을 찾습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의 ‘2026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The Asian Filmmaker of the Year)’ 수상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죠.

이 상이 바라보는 것은 단순한 한 해의 성과가 아닌 한 영화인이 오랜 시간 아시아 영화에 남겨 온 장면입니다. 남성 배우의 무대로 여겨졌던 액션 영화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그이기에 이번 수상의 영예는 더욱 뜻깊게 다가오죠. 이번 수상은 그의 40여 년 연기 여정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아시아 배우가 세계 영화의 중심에 서기까지의 시간을 함께 조명합니다. 시상은 오는 10월 6일 영화의전당에서 열리는 개막식에서 진행되는데요. 양자경이 부산 레드 카펫을 밟는 것은 영화 <더 레이디(2011)>를 선보인 이후 15년 만입니다.

맨몸으로 개척한 액션의 길

홍콩 액션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며 할리우드의 중심까지 나아간 양자경. 그를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화려한 대사도, 막대한 제작비도 아니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직접 부딪치고 넘어지며 완성한 강렬한 액션 연기였죠. 양자경은 영화 <예스 마담: 황가사저(1985)>에서 강력 사건을 쫓는 경찰로 변신해 본격적인 액션 배우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두 여성 경찰을 서사의 중심에 세우며 남성 배우가 주도하던 액션 공식을 완전히 뒤집은 이 작품은, 이후 강인한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연달아 나오는 계기가 됐죠. 이어 양자경은 영화 <폴리스 스토리 3: 초급경찰(1992)>과 <영춘권(1994)>에서도 대역에 기대지 않고 고난도 동작을 직접 소화해냈습니다. 등 뒤에서 붙잡힌 채 다리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 상대를 걷어차는 액션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데요. 곡예에 가까운 이 동작은 힘보다는 유연성으로 몸을 정확하게 제어하는 능력이 핵심입니다. 그의 정확한 움직임에는 오랫동안 배운 발레가 단단한 기반이 되어주었죠.

양자경이 홍콩을 넘어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한 순간을 이야기할 때 <007 네버 다이(1997)>를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임스 본드(James Bond)와 함께 작전을 이끄는 중국 정보요원이 되어 수동적이었던 이전의 ‘본드걸’을 주체적인 인물로 바꿔놓았으니까요. 이어 무협 영화 <와호장룡(2000)>에서는 화려한 검술과 함께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며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여기에 로맨스 코미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과 마블 시리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뮤지컬 영화 <위키드(2024)>까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액션 스타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었죠.

오스카로 세운 새로운 이정표

40년에 가까운 커리어의 정점에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가 있습니다. 양자경은 고단한 이민 생활과 삐걱거리는 가족 관계에 지친 세탁소 주인 ‘에벌린’을 맡아 멀티버스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는데요. 중년의 아시아계 여성을 거대한 모험의 중심에 세운 이 작품에서 그는 액션과 코미디, 깊이 있는 감정 연기까지 선보이며 자신이 쌓아온 시간을 한 역할 안에 압축해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진심이 관객과 영화계에도 닿았던 걸까요? 양자경은 이 작품으로 2023년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수상 무대에서 그는 “여성 여러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믿지 마세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며 많은 이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죠.

여기에 같은 해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과 미국 배우조합상도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특히 미국 배우조합상은 동료 배우들이 직접 평가한다는 점에서 배우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데요. 양자경은 영화 부문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이 되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이어 2026년에는 베를린국제영화제가 그의 업적을 기리는 명예 황금곰상을 건네며 양자경의 긴 배우 여정을 다시금 조명했죠. 오스카에서 베를린을 거쳐 부산까지. 그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편으로 만나는 양자경의 40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수상 소식만큼 반가운 특별기획 프로그램도 함께 찾아옵니다. 영화인의 작품을 한데 모아 걸어온 길을 되짚는 자리로, 양자경이 직접 고른 대표작 세 편과 올해 개봉한 신작 한 편을 상영할 예정이죠. 그의 과거와 현재를 네 편의 영화로 나란히 만나는 셈입니다.

먼저 <검우강호(2010)>에서 양자경은 과거를 지우고 평범한 삶을 꿈꾸는 암살자로 등장해 묵직한 무협 액션을 선보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다시 스크린에 오르죠. 여기에 다섯 명의 인물을 홀로 연기한 <산디와라(2026)>까지 더해지며 한 사람 안에 숨겨진 다채로운 얼굴을 펼쳐 보일 텐데요.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단연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2026)>입니다. 이번 신작에서 그는 일흔 살에 큐브의 매력에 빠져 대회에 도전하는 인물을 그리죠. 주변의 시선과 나이의 한계를 넘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자경의 작품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그를 결코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본드걸’ 공식을 바꾼 그는 복잡한 감정을 품은 어머니이자 판타지 세계의 마법사이기도 했으니까요. 양자경이 지나온 자리마다 여성 배우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조금씩 넓어졌고, 그의 행보는 아시아 배우의 할리우드 역사에도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었습니다. 양조위(Tony Leung), 주윤발(Chow Yun-fat), 구로사와 기요시(Kiyoshi Kurosawa), 자파르 파나히(Jafar Panahi)에 이어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주인공이 된 양자경. 오는 10월, 반세기에 가까운 그의 필모그래피가 부산의 스크린 위에 다시 펼쳐집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전당에서 그의 이름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