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을 여미게 되는 쌀쌀한 11월, 오히려 차가워진 공기는 전시장의 고요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작품에 한층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훌륭한 촉매제가 되죠. 최첨단 AI 기술과 동시대 예술이 충돌하며 빚어낸 실험적인 미디어 아트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반세기를 촘촘하게 훑어보는 역사적인 아카이브, 그리고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파고든 거장의 회고전까지. 에디터가 고른 11월의 전시 4곳을 소개합니다.
아트선재센터


4개의 시선이 교차하는 동시대 예술의 최전선
11월의 아트선재센터는 무려 4개의 전시를 동시 개막하며 압도적인 예술적 포만감을 선사합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스페이스 2에서는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 《불, 어느 아카이브》가 열립니다. 전후 일본의 민족주의와 폭력의 기억이 세대를 거쳐 어떻게 전달되는지 VR과 3채널 영상으로 묵직하게 파고들죠. 스페이스 1에서는 최하늘 작가의 《이갈이》가 이어집니다.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신체의 리듬과 일상의 균열을 조각으로 풀어내며 우리의 몸과 존재를 다시금 사유하게 만듭니다. 야외 정원과 더그라운드에서는 7인의 작가가 남성성의 은유로 여겨지던 수직성을 해체하고 다채로운 변주를 시도하는 기획전 《버티컬즈》가 펼쳐집니다. 마지막으로 아트홀에서는 컬렉티브 2mc1dj(김희천, 이하령, 홍승택)가 가상의 클럽을 배경으로 영상 없이 오직 사운드로만 전개하는 화면 없는 영화 《사건 볼륨 3》을 선보입니다. 풍성한 전시를 하나의 전시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세요. 전시는 1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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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 한화


인간과 AI의 아슬아슬한 교감
예술과 최첨단 기술의 짜릿한 만남을 목격하고 싶다면 퐁피두센터 한화로 향할 차례입니다. 한화문화재단이 글로벌 AI 기업 앤트로픽과 손잡고 야심 차게 선보이는 아트 커미션 프로젝트 《AS___AS POSSIBLE》이 열리고 있는데요. 앤트로픽이 한국의 문화예술재단과 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뜻깊죠. 남민오, 염인화, 우박 스튜디오, 정가희, 추미림 등 5팀의 국내 작가들이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를 활용해 탄생시킨 신작들을 대거 공개합니다. 작가들은 AI의 내부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해석 가능성과 인간의 가치에 부합하게 만드는 정렬 등 AI 연구의 핵심 질문들을 예술적 시각으로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영상, 설치, 퍼포먼스, XR 등 다채로운 매체로 풀어낸 이 흥미로운 전시는 기술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묵직한 화두를 던집니다. 전시는 11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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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한국 현대미술 50년의 서사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굵직하게 관통하는 시간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면 아르코미술관의 특별기획전을 추천할게요. 1974년 개관 이래 한국 미술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미술관의 방대한 소장품 중 엄선된 70점의 작품을 통해 시대별 미술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데요. 1970년대 단색화와 실험미술의 태동부터 민중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교차하던 1980년대, 장르의 경계를 허문 신세대 미술이 폭발하던 1990년대, 그리고 미디어와 설치로 매체가 무한 확장된 2000년대까지의 지형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미술대전의 발자취와 치열했던 미술관의 전시 아카이브 자료를 촘촘하게 엮어내어 텍스트와 이미지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오늘날 맹활약 중인 중견 작가들의 초기작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겠네요. 전시는 12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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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머핀


거장이 깎아낸 명상의 시간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세계를 무대로 40여 년간 묵묵히 자신만의 독보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 김윤신 작가의 개인전이 리만머핀에서 열립니다. 뉴욕 구겐하임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앞다투어 작품을 소장하며 국제적인 위상을 굳히고 있는 작가가 모국으로 돌아와 여는 뜻깊은 전시죠. 1층에서는 팬데믹 이후 새롭게 시도하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문 최신 ‘회화-조각’과 기하학적 유기성이 돋보이는 평면 작업들을 공개합니다. 이어지는 2층에서는 아르헨티나 거주 시절 대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캔버스에 담아낸 2000년대 연작을 전시해 작가의 과거와 현재가 웅장하게 대화하는 풍경을 연출합니다.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서로 다른 요소가 모이고 분리된다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나무를 깎고 물감을 긁어내는 반복적인 신체적 명상의 행위가 만들어낸 고요하고도 폭발적인 생명력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시는 11월 5일부터 12월 24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