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진우
<목소리들>
감독 권민표 출연 기진우, 이재리, 조준형
도율(기진우)의 가족은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는 중이다. 함께 일하던 형(조준형)은
연기를 그만둘지 말지 고민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도율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며 소소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 영화를 연출한 권민표 감독이 어느 날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함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럼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목소리를 따라가보자는 커다란 줄기만 잡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년의 프로젝트 <목소리들>은 1년의 시간에 걸쳐 만든 영화다. (권)민표 감독과 나는 각자 일을 한 뒤 돈을 벌어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2~3개월 동안 일하고 2~3일간 촬영하는 식이었다. 영화를 찍을 시기가 되면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나눴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 이 영화에는 나와 민표 감독 가족의 실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선 엄마, 아빠, 할머니 역으로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우리 가족이다. 작중에서 엄마는 나를 ‘도율’로 아빠는 ‘동주’로 부르는데, 그것도 실제 내 이야기다. ‘동주’는 내 본명이고 ‘도율’은 개명한 이름인데, 아빠는 내가 이름을 바꾼 게 마뜩찮은지 나를 여전히 동주라 부른다.(웃음) 그 모습을 본 민표 감독이 부모가 같은 자식의 이름을 각자 다르게 부르는 게 흥미로웠는지 그 설정을 영화에 담았다. 이처럼 영화에 현실과 허구의 사건이 뒤섞여 있다.
잊지 못할 순간 할머니와 함께 촬영한 날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민표가 “할머니, 큐 하면 시작하시면 돼요”라고 말하자 할머니께서 “뭘 그런 걸 말하냐”며 나무라셨다. 그냥 찍어야 더 자연스러운 거라고. 깜짝 놀랐다. 누구보다 연기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고 계셨다.(웃음) 민표가 할머니와 촬영을 끝낸 뒤 펑펑 울던 모습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신데, 조금이라도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모습을 남겼다는 점에서 내게도 의미가 깊다.
기억하고 싶은 목소리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세상이 변해도 절대 변치 않을 진리는 무엇일지 종종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는 인간에게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들은 소리들을 영화 안에 나의 목소리로 녹여내고 싶기도 하고. 언젠가 꼭 쓸모 있는 영화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 안에 머물며 쑥스럽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영화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며 반성하기도 한다. 인생의 스승 같은 느낌이랄까. 계속 배우를 해도 될지 수없이 고민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 걸 보면 새삼스레 내가 영화를 무척 사랑하는구나 싶다.
서울독립영화제 지난해에는 <늦더위>로 올해는 <목소리들>로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았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영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도 물론 소중하지만, 사실 영화는 관객을 만나야 의미가 생긴다고 본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아주 넓은 시선으로 다채로운 영화를 조명하며 그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 존경하고 감사하고 보답하고 싶은 존재다. 다양한 영화제에 다녀봤지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창작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유난히 더 크게 다가온다. 음… 말하다 보니 느꼈는데 아무래도 나는 서울독립영화제와 사랑에 빠진 게 아닐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