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 앞에 선 <파묘>의 네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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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지 중의 악지, 그냥 두죠

심상치 않은 곳에 있는 묘와 그를 둘러싼 기이한 일들. 무덤을 파헤치려는 주인공들은 물론, 관객들도 알고 있다. 저 아래에는 분명 ‘험한 게’ 묻혀 있다는 걸. 그런 악지는 덮어 두는 게 상책일 수 있다. 풍수사 상덕(최민식 분)의 말마따나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줄초상을 당하는 것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장의사 영근(유해진 분)의 말처럼 이 묘가 있는 동안에도 다들 충분히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한 차례 파묘해보니,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밑의 ‘더 험한 것’까지 꺼내야 할까? 무당 화림(김고은 분)은 이제 그 자리를 더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두자고 말한다.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영화 <파묘> 속 대살굿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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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우리의 땅, 나의 땅

그럼에도 끝내 이들은 두 번째 파묘를 감행한다. 이 일은 분명 ‘여우(일제)가 범(한반도)의 허리를 끊기’ 위해서 박아 둔 ‘오니(おに, 일본 도깨비)’를 뽑아내는, 나라를 위한 일이요, 대의를 위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다. 화림의 제자이자 상덕과 영근의 동료인 봉길(이도현 분)은 오니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그에게 의식까지 빼앗긴 상태다. 그래서 우리는 상덕의 말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맞다. 우리는 오니를 뽑아내야만 한다. 이 땅은 우리 공동체의 땅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니까. <파묘>는 이 지점에서 다소 멀게 느껴지는 ‘우리의 일’이 사실은 늘 턱 끝에 닿아 있는 ‘나의 일’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얼굴에 경문을 쓰고 파묘하러 가는 상덕(최민식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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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남겠지만

파묘는 네 주인공 모두에게 후유증을 남긴다. 빠르게 낫고 있으나 봉길은 여전히 부상에서 회복 중이고, 화림은 굿을 하다 오니의 얼굴을 보고 순간 놀라 깃발을 떨어뜨린다. 오니와 싸우다 생긴 상덕의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배어 나온다. 영근은 장례를 치르다 천 아래 시신의 얼굴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움찔한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들은 분명 파묘할 것이다. 진정 그 자리를 그대로 덮어 두고 싶어하는 것은 이들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망령이 보호하던 사람들이므로. 과거의 트라우마가 영영 그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자들 말이다. 자, 그렇다면 정말 미래로 “전진, 전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말뚝을 뽑은 자리에는 상처가 남지만, 새 살은 반드시 차오를 것이다. 내일로 가는 발걸음은 그제야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