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예 은

2000
미디어 아티스트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아름다운 이미지 너머의 깊은 메시지를 고민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여행에서 만난 낯선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며 수집한 이야기들을 동력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풀어낸 작업을 선보인다. 한국에 거주하는 재외 동포 인터뷰와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 <녹화된 경계, 인근의 대화>를 만들었고, 다양한 브랜드 필름과 광고 영상 등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더욱더 미친 사람이 돼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한번 태어난 인생이니까, 미친 사람처럼.(웃음)”

두 개의 시야 카메라를 접한 뒤, 나한테 다른 시야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여행을 가거나, 낯선 상황에 놓이거나, 평범한 사물을 봐도 두 배로 곱씹어 생각하게 되니까.

카메라와의 첫 만남 중학교 2학년 때 사촌 오빠의 카메라를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찍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 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는데, 이를 계기로 우연히 뮤직비디오 연출을 의뢰받아 카메라 하나만 믿고 영상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좀 부끄럽지만(웃음), 날것 그대로 찍는 재미가 있었던 작업이다.

작업의 동력 돌이켜보면 내가 하고 있는 게 작업인지도 모르고 그냥 했던 것 같다. 좋아서 계속 했는데 돌아보니 작업이었던 거다. 취업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생각이 많아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 것에 온전히 집중해 그것만 파고들면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간 작업해오며 한편으로는 외로웠다. 촬영장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할 때도 꽤 있었고. 그런데 돌이켜보면 현장에서 쌓은 경험들이 좋은 자극이 된 것 같다. 작업을 위해 꼭 일정한 순서나 단계를 밟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펜도 있고, 종이도 있고, 내가 찍고 싶은 대상도 눈앞에 있는데. 이런 마인드로.

가능한 한 멀어지기 현재의 주류로 꼽히는 것들에서 최대한 멀어져 뜬금없는 걸 하고 싶다. 가령 요즘 AI나 3D를 활용하는 작업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거다.

포착하고 싶은 장면 요즘 낯섦과 익숙함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데, 언젠가 낯선 사람의 삶 일부에 참여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이를테면 길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이나 촬영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을 때의 모습을 가정하고 사진으로 담아보는 거다. 입을 맞추거나 껴안는 행위 말고도 가까운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친밀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지키려는 태도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언젠가 스페인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봤는데, 이민자 신분으로 국경에 오래 머무른 작가가 자신이 작성한 서류 더미 3백 장을 모조리 벽에다 붙여놓은 작품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작품을 통해 한 사람을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건 어떤 학위나 자격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여실히 느끼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작품에서 그 사람의 삶이 느껴지는 게 중요하다고 믿고, 나 역시 내 삶을 잘 들여다보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

미친 것처럼 처음으로 펑크 공연을 봤을 때 수많은 관객이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다 같이 있는 힘껏 부딪고, 헹가래를 치고, 넘어지는 그 광기 어린 모습이 참 멋있었다. 음악에 미쳐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니 마냥 부러웠다. 그 장면을 보며 더욱더 미친 사람이 돼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한번 태어난 인생이니까, 미친 사람처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