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주소서’.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가 직시하는 슬픔, 그에 공감하는 일.

“원, 불 붙이는 날 본 사람은 다 죽여버렸어. 애기고 어른이고. 우린 살려고 산으로 올라간 거지.” “그런 전쟁은 세상천지에 없을 거예요.” 7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때의 두려움, 절박함, 고통. 1940년대 후반, 무고한 제주 사람들의 터전과 목숨을 앗아간 제주 4·3에 대한 분명하고 진실된 증언이다. 제주 4·3을 겪은 다섯 할머니의 증언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교차되거나 덧입혀지며 관객의 마음에 천천히 스며든다. 그리고 끝내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아픔이 스크린 너머로 파도처럼 밀려든다. 김경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보고 난 후 남겨진 슬픔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 된다. 감독은 그 마음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참혹한 시간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슬픔에는 그런 힘이 있다며.

제주4·3도민연대에서 영화 작업을 제안받기 전부터 이 사건에 관심을 두었다고 들었어요. 제주4·3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한 건가요?

이전부터 제가 해온 작업이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데다, 제주 4·3이 참사의 크기에 비해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것 같아 이 일을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품어왔어요. 또 이런 생각도 한몫했는데, 사회적 참사를 겪은 이들이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할 때마다 ‘빨갱이’라며 왜곡하고 폄훼하는 말이 잇달아 나오는데, 왜 그럴까 의문을 품으며 거슬러 올라가 보니 4·3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그때의 역사가 지금까지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럼 시작을 살펴야겠다 싶었어요.

형태와 양상, 시대는 다르지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본 거죠?

그게 연결된다고 생각한 건, 우리 사회가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사실을 억압 하려고 하는 거죠. 듣기 거북하고 불편하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된 게 일종의 관성처럼 느껴졌어요. 관성이라면 분명 과거부터 축적된 무언가가 있을 테고, 그럼 어디서부터 반복된 건가 돌이켜 생각하니, 결국 4·3으로 연결된 거죠. 물론 세월호 사건 같은 이 시대의 참사가 4·3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일은 아니지만, 저는 큰 영향 아래에 있는 일로 생각한 것 같아요.

이미지 제공: 무브먼트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주소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북촌 위령비 뒤에 적힌 문구의 일부예요. 이것이 4·3을 이야기하는 가장 정확한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를 꼭 영화에서 인용하고 싶었어요. 저는 ‘어리석음’이라는 단어가 특히 와닿았는데, 아주 끔찍하고 잔인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잖아요. 나름대로 이유를 대면서요. 그런데 그 이유가 터무니없는 거예요. 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위령비를 보면서 그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슬픔의 힘’ 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슬픔의 권능’이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계속 슬픔을 직시하게 만드는구나 싶었고요.

맞아요. 만약 4·3을 알게 된 사람들이 이에 슬픔을 느낀다면, 반쯤은 해결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피해자들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건 더 이상 그런 어리석음이 없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을 정확하게 알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근원을 알게 됐을 때 그 슬픔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요.

피해자의 슬픔과 고통을 들춰내야 하는 작업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4·3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유의한 점은 무엇인가요?

그분들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괴롭히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제일 크게 고민한 것은 다른 측면이었습니다. 4·3의 피해를 전하는 것이 폭력이나 잔인함의 전시가 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컸는데, 한편으론 이 일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도 전해야 했기에 그 점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초토화 작전 장면 같은 경우는 잘못하면 스펙터클한 신으로 소비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어요. 그래서 훨씬 크고 역동적인 불길과 연기를 많이 촬영했지만 과잉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모두 버렸어요. 그게 전쟁을 그린 오락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4·3 당시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길 바랐으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놀란 점 중 하나가 그 부분이에요. 분명 무고한 피해자임에도 다들 자신이 겪은 일을 고백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커 보였어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자식들에게 얘기할 만큼요.

많은 분이 4·3에 연루돼 감옥을 갔다 왔기 때문에 자식들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없었어요. 부모가 4·3 때문에 감옥을 갔다 온 게 결격사유가 돼 어떤 일을 할 때 배제당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또 4·19혁명 직후에 4·3을 겪은 분들이 자신의 피해를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잡혀가 수난을 겪기도 했고요.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도 얘기하지 못한 거죠. 과거와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70여 년 전 일을 왜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되겠네요. 그러니까 4·3은 지금에야 가능한 이야기인 거죠.

그렇죠.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다시 간첩 사건 같은 데 엮여 감옥에 갈 수 있었거든요. 단지 망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위협이었던 거예요.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무서운 사회지만, 옛날에는 말도 못 했던 거죠.

혹시 이런 사실을 영화에서 더 설명하고 싶진 않았나요? 영화가 4·3 수형인의 증언 외의 설명은 최대한 덜어낸 채 진행되는데요.

물론 하고 싶었죠. 그런데 이 지난한 고통의 이야기를 1백 분 내외의 영화 한 편에 다 담을 수 없더라고요. 사실 내레이션도 입히고 음악도 깔면 더 쉽게 전달되긴 하겠지만, 그 방식은 4·3을 전달하는 데 부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되어버리니까요. 그보다는 관객이 보고 스스로 생각할 여지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 편이 더 설득력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이미지 제공: 무브먼트

그래서 4·3 수형인의 증언에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경관을 덧입히거나 교차하는 방식을 택한 건가요? 고통과 슬픔을 직면하는 이야기지만 미학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부분이 느껴졌습니다.

되도록 아름답게 찍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4·3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인도자 역할을 자연이 해주길 바랐어요. 다만 그 아름다운 자연이 관광을 위해 개발된 형태가 아니라, 제주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미감 그대로 담아내려 했고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부분인가요?

설경을 좋아하게 됐어요. 제주 설경이라면 무조건 촬영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에서 설경이 많이 등장했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경관이기도 하지만, 4·3 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서 더 많이 담게 됐어요. 1948년 가을에 초토화 작전이 시작돼 이듬해까지 계속됐는데, 그해 겨울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었어요. 가장 참혹한 계절이었죠.

이렇게 완성된 영화를 누구에게든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나요?

물론 4·3에 대해 폄훼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죠. 중간에 못 나가도록 문 잠그고 제대로 응시하라 하고 싶어요. 보고 나서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할머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생생하거든요. 그게 진짜라는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거예요.

이후 작업에서도 4·3에서 연장된 이야기를 다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4·3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4·3이 워낙 긴 기간에 걸쳐 일어났거든요. 중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가 끝났을 정도로요. 그때 전쟁을 겪은 수형인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에서 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한국전쟁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어서이기도 해요. 보통 전쟁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여기는 아군, 저기는 적군 이렇게 나누는 건데, 내밀하게 들어가보면 그게 너무나 뒤섞여 있어요. 두 진영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건 사실과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음 영화에 이 부분을 잘 담아내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와 마찬가지로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상기해야 할 문제가 담긴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의 실체,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잖아요. 정보는 갈수록 넘쳐 나는데, 각자의 삶은 힘들고 버거우니 언제 다 고려해보겠어요. 간단하게 딱 잘라서 이게 나쁘고 이게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더 큰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되돌아보는 상기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의 영화는 모두 과거를 다루지만, 지향점은 지금과 다음 세대를 향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 일을 직시해 이후의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보이는 듯하고요.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준비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되게 이기적으로 이 작업을 대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4·3을 겪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로하기보다는 이후 세대를 위한 작업이라고, 좁게는 저 스스로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영화를 만든다는 건 그 당시의 일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건데 이를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길, 그래서 내가 머무는 사회가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죠. 물론 어른들의 증언을 조심스럽고 귀하게 담아내려 애썼지만, 영화가 결과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은 분명 다음 세대에 있어요.

이 영화를 만든 후 남는 마음이 사람에 대한 회의일지 희망일지 묻고 싶었는데, 좀 전의 답변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웃음) 그 마음은 계속 출렁출렁할 수밖에 없어요. 계속 변해가는 게 세상이고, 그중에는 좋은 변화도 나쁜 변화도 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최근 관객 반응을 접하면서 조그마한 희망을 발견하긴 했어요. 작업할 때만 해도 이 영화가 젊은 세대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너무나 오래전 이야기인 데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잖아요.(웃음) 그런데 의외로 젊은 관객 중에 공감하는 반응이 꽤 많았어요. 그 사실이 참 기뻤어요. 새로운 세대는 정상성에 대한 기대가 다른 것 같더라고요. 최소한 사회라면 이 정도까지는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했다는 데 대해 더 크게 실망하더라고요. 이런 점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