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7일 만에 900만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영월로 유배당한 이후 단종의 순간을 그린 사극 영화가 천만 고지를 향해 질주하며 잠잠하던 극장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흥행, 천만 영화 코앞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3월 3일 기준 900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개봉 27일째 누적 관객 수 900만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요. 3·1절 하루에만 81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자체 일일 최다 기록까지 갈아치웠죠. 이 흐름대로라면 천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설 연휴에 이어 3·1절 연휴까지 이어진 관람 열기가 작품의 뒷심을 만든 것인데요. 개봉 4주 차에 접어든 영화가 오히려 관객 수를 끌어올리는 흐름은 이례적이죠. 한국 극장계의 침체기가 왔다는 말이 무색하게 입소문과 재관람 열풍이 더해지며 ‘왕과 사는 남자’는 멈출 줄 모르는 흥행 곡선을 쓰고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속도 면에서도 눈에 띕니다. 개봉 26일째 800만을 돌파한 뒤 하루 만에 900만 고지를 넘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죠. 이 수치는 역대 1000만 사극 영화들과 비교해도 빠른 속도인데요. 2005년 작 ‘왕의 남자’가 900만까지 50일,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31일이 소요됐었죠.
장항준 감독은 첫 천만 감독 타이틀을 눈앞에 두고 있고, 유해진은 또 한 번 흥행 필모그래피를 추가하게 됐습니다. 박지훈은 첫 상업 영화 주연작으로 900만을 이끌며 배우로서 확실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죠.


1457년 청령포, 어린 왕 단종의 시간
이 작품은 1457년 강원 영월 청령포 유배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단종 이홍위(박지훈)와 광천골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만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죠.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기록에 남지 않은 시간과 관계에 상상을 더해 서사를 확장해 나갑니다.
영화 초반,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우며 권력의 중심에 선 한명회(유지태)는 어린 단종을 압박합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체념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날을 묻던 소년은 그렇게 무력한 유배를 떠나게 되죠. 그러나 유배지 청령포에서 촌장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변화가 시작됩니다. 힘을 잃은 어린 소년은 점차 백성을 위하고 지키려는 의지를 품은 왕의 면모를 보여주게 되죠.
특히 정치적 격랑보다는 역사 속 인물 한 명 한 명의 감정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연출이 인상적인데요. 산속에서 범을 마주하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활을 겨누는 단종의 기개, 낮은 소반을 사이에 둔 소박하지만 웃음 넘치는 식사 장면, 강가의 고요한 물빛까지. 사극 특유의 무게감과 인간적인 온기가 교차하며 단종의 마지막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합니다. 또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깊어지는 인물들 간의 감정과 서사가 관객들에게 진한 슬픔과 함께 감동을 선사하죠.

900만 기념, 강가 포스터의 울림
900만 돌파와 함께 공개된 강가 포스터는 영화의 정서를 압축해서 전달합니다. 흰 도포를 입은 이홍위(단종)가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을 튀기는 장면은 왕으로서의 모습보다 한 소년의 고독이 먼저 보이는 장면이죠. 이 장면은 배우 유해진의 제안으로 탄생했다는 비하인드가 전해지며 더욱 화제가 됐습니다. 유해진은 유배지에서의 이홍위를 바라보며 “아들을 보는 마음과도 같았다”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박지훈 역시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홀로 물장난을 치는 단종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고민했다고 전했죠.
배우들에게 남은 의미
이 영화는 배우들에게도 의미가 깊습니다. 유해진은 또 한 번 사극 흥행의 중심에 섰고, 박지훈은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도전해 연기력을 입증받았죠. 유지태와 전미도 역시 각자의 배역을 통해 서사에 균형을 더했습니다. 작품은 단순한 흥행 성과를 넘어 배우들의 커리어에 굵직한 이정표로 자리하게 됐습니다.
부진했던 극장가에 찾아온 활력
최근 몇 년간 한국 극장가는 흥행작 부재와 관객 감소로 침체된 분위기였죠. 이번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이 흐름을 반전시키는 신호로 읽힙니다. 2024년 ‘파묘’와 ‘범죄도시4’ 이후 2년 만에 다시 천만 영화 탄생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은 의미가 있죠. 극장가에 활기가 돌며 상영관 확대와 특별 상영 이벤트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작품 한 편이 산업 전반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입니다.
흥행과 함께 흥미로운 현상도 포착됩니다. 영화를 본 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장릉을 찾는 관람객이 늘고 있으며, 관련 역사 자료와 소설을 다시 찾아 읽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스크린 속 이야기가 실제 역사 공간으로 관객을 이끄는 셈이죠.


900만이 갖는 의미
‘왕과 사는 남자’의 900만 돌파는 단순한 흥행 수치를 넘어서는 장면입니다. 한동안 조용했던 한국 극장가가 다시 관객의 선택을 받았고, 역사 기록 속에 머물던 단종은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감정에 귀 기울이는 서사가 있죠.
천만을 눈앞에 둔 지금, ‘왕과 함께 사는 남자’의 흥행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청령포에 머물렀던 어린 왕 단종의 시간이 영화를 통해 현재의 관객들에게 닿았고 그 울림은 여전히 극장 안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