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몸짓의 변화 속에서 발견한 자유. 모나 파스트볼드 감독이 연출한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서른한 번째 프로젝트 <Discipline>은 인형들의 춤을 통해 여성에게 덧입혀진 제약을 벗겨내고, 끝내 해방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공적 공간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요.
다양한 버전의 본인을 연기하듯이 존재하는 거죠.
이때 우리가 입는 옷은 연기의 일부가 되어 그 의도를 강조해요.
그러니 옷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마침내 세상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완성되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낸 한 소녀.’ 독창적인 여성 감독을 초청해 21세기 여성성을 탐구하는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 프로젝트의 서른한 번째 작품, <Discipline>은 정체성이 형성되기 이전에 입혀지는 ‘소녀성’을 다룬다. 올해 2월 뉴욕에서 최초로 선보인 이 단편영화는 노르웨이의 젊은 여성 감독이자 배우인 모나 파스트볼드(Mona Fastvold)의 연출로 완성되었다. <다가올 세상>을 비롯한 전작을 통해 인물 중심적 서사를 그려왔고, <브루탈리스트>의 공동 각본가로도 잘 알려진 그가 영화에 담긴 이야기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논의에 대한 말들을 전해왔다.

<Discipline>의 이야기는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유일한 조건에서 출발했다. “미우미우와의 협업은 전반적으로 자유로웠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미우미우의 룩을 일부 사용할 것’이라는 조건만은 지켜야 했죠. 감독이 직접 옷을 고를 수 있고, 필요하면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했어요. 그게 <Discipline>의 영감이자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감독은 미우미우 2026 S/S 컬렉션에서 하나의 룩을 선택했고, 이를 개인적 경험과 연결지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드레스를 입은 적이 있어요. 참 아름다운 드레스였는데,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옷이 편치 않더군요. 그 드레스를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발전시켰습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태도를 규정하는 ‘장치’였던 그 드레스는, 영화 안에서 소녀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의복(costume)’이 된다.
영화는 이탈리아 북부의 장엄하면서도 스산한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폐허처럼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건물 안에는 두 부류의 존재가 짝을 이뤄 생활하고 있다. 사람 크기의 인형, 그리고 새하얀 가면을 쓴 인형의 조종자. 이들은 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옷을 갖춰 입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반복되는 일과를 따라 행동한다. 야외 놀이 시간, 수프가 제공되는 점심 시간, 교장의 점검 시간. 이후 이들은 강당에 모여 각자의 짝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서서히 절정으로 향한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위해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셀리아 롤슨 홀(Celia Rowlson-Hall)과 협업했다. 그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다뤄온 안무가로,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열네 번째 작품을 연출한 바 있다. 영화 속 ‘인형 놀이’를 구현하며, 감독은 안무가에게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셀리아에게 ‘인형들은 반드시 세심한 배려와 사랑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인형과 조종하는 존재 사이에 어떤 친밀감이 지켜지기를 바랐거든요. 그래서 인형을 몸에 부착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했고, 인형과 조종자의 몸이 하나가 된 듯한 움직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감독과 안무가, 그리고 인형을 조종하는 역할을 맡은 무용수들은 함께 안무를 만들어갔다.
“처음에는 정교하게 짜인 안무를 요청했어요. 그런데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훨씬 자유분방하고 날것 같은 형태로 변경되었습니다. 억제되어 있던 인형의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순간을 극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조종당하며 안무를 익힌 인형들은 어느 순간부터 조종자와 듀엣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무용수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어요. ‘어린 시절의 본인과 춤춘다고 상상하면서 연기해주세요.’ 그때 인형은 각자의 열두 살 자아를 의미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를 통해 영화 속 인형은 ‘자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주체성을 되찾는다.
비로소 자신을 인지한 인형들은 ‘내면의 저항’을 시작한다. 그 저항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닌, 지속적인 투쟁이다. 세상의 시선 속에서 부여받은 의복을 입은 채 춤추던 인형은 거부의 몸짓을 통해 점점 자유를 찾아간다. 그러다 끝내 균열과 황홀이 교차하는 순간, 인형의 옷이 벗겨지며 한 소녀가 탄생한다. 소녀를 연기한 배우는 감독의 최신작인 역사 뮤지컬 <더 테스터먼트 오브 앤 리>에서 호흡을 맞췄던 아만다 사이프리드. “아만다는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하는 배우예요. 그와 <Discipline>으로 또 한 번 협업하면서 ‘해방된 순간’ 에 대한 호기심을 대화 주제로 자주 삼았습니다. 그 순간을 정확히 표현해줄 수 있는 신체의 움직임을 함께 찾아나갔어요.” 소녀는 마침내 자신을 직접 통제하며 세상을 향해 스스로 첫발을 내딛는다.

영화를 완성한 지금도, 감독은 ‘드레스를 입는 행위는 일종의 갑옷’이라는 제작 초반의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 “사적인 세계와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공적 공간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요. 다양한 버전의 본인을 연기하듯이 존재하는 거죠. 이때 우리가 입는 옷은 연기의 일부가 되어 그 의도를 강조해요. 그러니 옷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옷이 여성에게 가하는 제약은 역사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감독은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시선을 중시해왔다. “여성의 옷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지녀요. 옷, 즉 우리가 덧입은 ‘레이어’가 무엇을 의미해왔고, 또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감독에게 영화의 끝은 ‘질문의 시작’과 같다. 그는 이라는 작품 자체가 하나의 큰 물음표일 수도 있다고 귀띔한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라왔어요. 그로부터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으면 하고요. 저는 여성의 경험을 다루는 이야기에 특히 관심이 많아요.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복잡하고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요. 경계를 넘어, 여성성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영화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성성에 대한 감독의 관심은 영화 현장으로도 이어진다. “흔히 감독 하면 ‘천재적이고 영웅적인 남성 감독’이라는 클리셰를 떠올립니다. 그게 마치 이 직업의 원형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저는 감독이 멀티태스킹을 하는 어머니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고, 섬세하면서도 우아하게 주변을 헤아리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는 감독의 일이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영화 산업 내에서 여성의 참여율은 여전히 저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독은 이번 단편영화 제작 현장이 다수의 여성 스태프로 채워졌다는 점을 인상 깊게 꼽았다. “젊은 여성을 많이 참여시켰어요. 18명의 여성 무용수가 함께했고, 저의 훌륭한 프로듀서 매디 브라우닝(Maddie Browning)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었죠. 여성의 비중이 높은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경험 자체가 큰 영감을 주었어요. 보다 균형 잡힌 젠더 환경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당신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지라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감독이 <Discipline>을 공개하며 남긴 말이다. 자아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주어진 안무를 따라하던 영화 속 인형처럼, 오늘날 여성들은 스스로 동의하지 않은 여러 제약을 암묵적으로 부여받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이죠.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평등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예요. 이를 이루기 위한 싸움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궁극적인 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