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찬란하게 뭉그러진 여름날의 기억. 영화 ‘르누아르’는 하야카와 치에라는 어른과 스즈키 유이라는 아이가 함께 그린 상실과 성장의 순간이다. 영화 개봉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이들을 만났다.

‘르누아르’는 어떤 작품인가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하 하야카와 치에) ‘르누아르’는 후키라는 아주 독특한 11살 여자아이의 한여름을 그린 이야기예요.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스즈키 유이 배우(이하 스즈키 유이) 이 영화는 후키가 성장한 1980년대 후반의 어느 여름날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거나,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스즈키 유이 배우도 이 영화를 찍을 당시 후키와 같은 11살이었죠. 후키로서든, 스즈키 유이로서든 이 작품을 통해 실제로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스즈키 유이 촬영을 모두 마쳤을 때요. 이렇게 큰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다 보니 긴장도 많이 했고, 힘든 순간도 많았거든요. ‘그래도 끝까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작품의 출발점도 ‘아이들은 언제 어른이 되는가’라는 질문이었다고 들었어요. 영화를 완성한 지금, 이에 대한 답을 찾았나요?
하야카와 치에 하나는 완벽하다고 믿었던 부모도 사실은 약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인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얄팍하기까지 한 존재라는 걸요.(웃음) 그리고 또 하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이요. 저는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요.
스즈키 유이 저는 어른이라는 존재가 ‘나는 완전하다’라고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른과 아이를 사실 딱 잘라 구분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른도 때로는 아이 같을 수 있고, 아이도 때로는 어른 같은 면이 있으니까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긴 한데요.(웃음) 아이는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새싹 같고, 어른은 어느 정도 성장한 꽃봉오리 같아요. 그리고 그게 활짝 피어나는 순간, 그 사람이 정말 성장했다는 증거가 되는 게 아닐까요?

후키도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거대한 슬픔을 경험하며 성장하죠. 한편, ‘죽음’은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전작 ‘플랜 75’에서도 핵심적인 주제로 다뤄졌는데요. 서로 다른 연령대의 주인공들을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야카와 치에 ‘플랜 75’를 만들 때는 ‘왜 나는 이렇게 죽음이라는 주제에 끌릴까?’ 하고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어요. 돌이켜보니 아버지의 암 투병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이 제 안에 크게 남아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는 바로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실제 어린 시절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고요.
그래서인지 ‘르누아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어요. 시간 역시 선형적으로 흘러가지도 않고요.
하야카와 치에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어렴풋하잖아요. 아이들은 상상이나 망상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뒤섞어버리는 경우도 많고요.(웃음) 그만큼 경계가 모호하달까요? 그래서 저 역시 그 선을 명확하게 나누지 않으려 했어요.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스즈키 유이 후키가 영어 선생님에게 “돌아가신 아빠를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후키가 “오랜만이야!”라고 답하거든요. 저는 그 대사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말이 정말 후키다운 말이라고 느꼈거든요.
하야카와 치에 그 대사, 유이 배우가 직접 생각해낸 거였잖아요.
스즈키 유이 맞아요. 제가 스스로 가장 후키다워졌다고 느꼈을 때 떠오른 대사였어요. 저라면 그냥 “와!” 이럴 것 같은데, 후키는 더 담담하고 순수하게 “오랜만이야”라고 말할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드릴게요.
스즈키 유이 영화를 보다 보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위태로웠던 기억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또 아이들만이 가진 힘도 느낄 수 있을 거고요. ‘어른이란 뭘까?’, ‘아이란 뭘까?’ 같은 소박하면서도 평소에는 의문을 느끼지 않았던 것에 관한 질문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야카와 치에 ‘르누아르’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는 아니에요. 여백이 많고,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부분이 크거든요. 한국 관객분들은 영화를 받아들이는 감각과 이해도가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그런 분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봐주실지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