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세계는 이 별을 채우는 수많은 세계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일디코 에네디(Ildiko′ Enyedi) 감독은 이 명백하고 엄연한 진리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린다.

영화 <침묵의 친구>는 인간과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깊은 사유의 영화다. 이야기는 1908년, 1972년, 2020년 세 시기를 가로지르며 각기 다른 인물들의 고립된 시간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은행나무가 있다. 말없이 시간을 견디며 인간의 삶을 지켜보는 존재. 영화는 인간의 감각이란 얼마나 제한적이고 협소한지, 우리가 보고 듣는 세계가 얼마나 작고 일부에 불과한지를 극도로 아름다운 영상과 소리로 전한다. 일찍이 영화 <나의 20세기>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지나오며 인간과 세계를 지적이고 사려 깊게 담아냈던 일디코 에네디 감독의 신작이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를 잠시 바라보게 하는 고요하고도 선명한 힘을 반드시, 극장에서 마주하길. 4월 15일 개봉.

서울에서 둘째 날을 보내고 계시지요. 지난해 부산에 이어 한국 관객을 다시 만났습니다. 환호가 남다르지요?(웃음)

아주 흥미로웠어요. 유럽이나 미국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거든요. 양조위 배우가 한국에 팬이 아주 많고, 팬들이 무척 다정해요. 그래서 어제 ‘관객과의 대화’가 열린 극장 안은 그야말로 수백 대의 휴대전화로 가득 차 있었죠. 그 자체로 굉장히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영화 <침묵의 친구>는 3개의 시대(1908년, 1972년, 2020년)를 가로지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라봅니다. 이야기 속 ‘은행나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을 지켜보는 하나의 ‘목격자’처럼 시공간을 지키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더 오래, 더 깊게 세계를 기억하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이 이야기의 시작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저는 10대 시절부터 식물의 소통에 관한 실험에 관심을 가졌어요. 1970년대 학계에서도 이런 생각이 본격적으로 흥미롭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죠. 식물에게도 저마다 사회적 삶이 있고, 식물들끼리 나누는 고유한 방식의 소통이 있을지 모른다는 건데요. 동시에 어쩌면 우리도 그 세계를 잠깐 들여다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아가 식물이 우리를 바라볼 때 무엇을 보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제 이전 영화에도 식물과 동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20여 년 전에 만든 영화 중에는 화분 속 식물이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도 있었어요. 어느 날, 아주 훌륭한 독일 프로듀서 한 분이-안타깝게도 최근 세상을 떠나셨지만-저에게 “식물에 관한 영화를 함께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 도시와 이 정원, 그러니까 영화의 무대가 되는 식물원이 떠오르더라고요. 알게 된 지 30년도 넘은 정원이거든요. 아주 단순하지만 무척 매혹적이고, 또 굉장히 강한 분위기를 지닌 장소예요.

영화에도 화분 속 식물이 인간을 관찰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저 역시 사실일 수 있다 는 생각에 식물 앞에서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분명히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도 조심해야겠죠.(웃음)

세 시대와 각각의 인물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역사적 조건이 교차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왜 이 세 시대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1972년은 감독님의 청년기라는 점에서 조금 더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물론 다른 시점을 고를 수도 있었죠. 가령 더 먼 과거를 택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고작 1백 년 남짓한 시간에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관객이 체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2백 년 전으로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갔다면, 우리가 불과 10년 사이에 얼마나 크게 변하는지 오히려 실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만 비교해봐도 우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잖아요. 제가 고른 이 시점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동하고 변해가는 순간들입니다. 말하자면 시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지점들이죠. 그래서 이 세 시대를 택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각 시대의 세 주인공이 모두 어떤 고립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1908년에는 남성들만 있는 대학 안의 유일한 여성 학생이고, 1972년에는 홀로 집에 남겨진 이가 여행을 떠난 이를 대신해 제라늄 화분을 돌보게 되죠. 2020년에는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있고요. 어떤 이유로 세 인물을 모두 고독하고 고립된 조건 속에 두셨는지요?

저는 연구라는 행위 자체에 큰 관심이 있어요. 연구자들의 작업, 그 자유로움과 대담함에 끌립니다. 무언가를 정말로 새롭게 발견하려면 어느 정도는 체계 바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스템 안에 완전히 편입된 상태에서는 어렵죠. 이 세 인물은 모두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외로운 자리이긴 해요. 하지만 외로움이 슬프거나 고통스럽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어떤 기준에 맞추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일상에서 보지 못한 어떤 면을 발견하는 데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맞아요.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고립되어 있지만, 동시에 자연과 식물을 통해 서로 어딘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이 시점에 ‘연결’을 이야기하는 일이 왜 중요하다고 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인간들의 연결을 직접적으로 만드는 데에는 꽤 신중하려고 했어요. 물론 서로 닮은 점은 보이죠. 하지만 제가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식물과 연결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자기 안에서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나 시선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것은 자연을 발견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편집 과정에서도, 또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도 인간 사이의 연결을 분명하게 그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우리는 늘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이번 작품에서는 가능하다면 식물의 관점 쪽으로, 혹은 인간과 식물이 잠시 공유하게 되는 어떤 관점 쪽으로 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습니다.

©Pandora Film

인간 사이의 연결을 느슨하게 그리는 과정에서 양조위 배우가 연기한 신경학자 토니웡과 학교 경비원 사이에 공통 언어가 없음에도 감정이 전달되잖아요.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언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언어는 무척 아름다운 도구이고, 대단히 놀라운 도구예요.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자신과 공통의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존재들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 이외의 다른 소통의 통로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언어는 잘못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언어는 경이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죠. 문학만 생각해봐도 그래요. 우리는 2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과도 언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고, 수백 년 전에 누군가가 써놓은 문장을 읽으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분명 언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도구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기와 소통할 때, 식물과 마주할 때, 동물과 함께 있을 때는요?

촬영 기법과 영상미 또한 인상적입니다. 영화 전체가 아름답고, 우아하죠. 세 시대를 각각 서로 다른 촬영 포맷을 사용한 형식적 선택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영화는 인식,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미지의 질감은 처음부터 아주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동시에 사운드 디자인에도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실제로 아주 많은 작업을 했어요. 우리는 처음부터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계획하고 실험했습니다. 16mm, 35mm, 디지털카메라까지 모두 테스트했어요. 최종적으로는 알렉사(Alexa)를 사용했지만, 다른 디지털카메라도 시험했고, 소니 베니스(Sony Venice)도 고려했습니다. 각각의 카메라는 세계를 대하는 태도 혹은 접근 방식 자체를 다르게 드러내기 때문이에요. 가능한 한 대사와 언어 없이 많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재료를 쓰는지, 어떤 필름 질감을 택하는지, 어떤 렌즈와 어떤 카메라 움직임을 선택하는지가 이미 영화 안에서 많은 것을 말하고 있어요. 사운드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고요.

배우 양조위와 협업한 점 역시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이 인물을 그릴 때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뒀다고요. 배우의 어떤 면이 토니 웡이라는 인물을 가능하게 했나요?

앞서도 말했듯 우리는 대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많은 것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면 위에 아주 특별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어요. 말 없이도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요. 이 영화에서 저는 양조위 배우에게, 그로서는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어떤 인물을 건네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매우 닫혀 있고, 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사람 같은.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장식이나 장치, 분위기 같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마치 수도승처럼 단순한 방식으로 인물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양조위라는 배우는 인위적인 요소 없이도 충분히 강한 배우죠. 그 자체로요.

이 영화를 두고 “인간이 만든, 인간을 위한 영화”라고 하셨지요. 어떤 의미인지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 영화를 통해 지금의 인간세계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색이라고 인식하는 빛의 범위는 실제로 존재하는 넓은 스펙트럼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는 인간이란 결국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를 공유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색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영화 안에 담을 수는 없지만, 그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영화는 나무가 실제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세계를 느끼는지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아닙니다. 인간의 감각은 매우 제한적이고, 또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지닌 풍부함과 충만함, 그리고 진실성을요. 그들 역시 하나의 현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우리의 현실만큼이나 유효하다는 점을요.

이 영화를 시작하고, 끝맺으며 감독님 스스로 변화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만드는 모든 영화는 저를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저를 다시 저 자신으로 되돌려놓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작업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하나의 모험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팀도 있지만,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주로 독일 스태프들과 작업했는데, 무척 인상적인 사람들이었어요. 자신의 분야에서는 매우 강인하면서도, 동시에 놀라울 만큼 열려 있고 순수한 태도로 작품에 몰입합니다. 시나리오와 우리가 하려는 일에 스스로를 맡기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창의성을 발휘하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감동적인 경험입니다. 영화 작업이라는 건 사랑하지 않으면 굉장히 지루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결국 남는 사람들은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아주 진지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감독님께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무엇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아주 정교하게 이어지는 하나의 경험입니다. 처음에는 완전히 혼자입니다. 저는 시나리오를 혼자 쓰기 때문에 그 시간은 매우 고독한 여정이죠. 그다음 단계에서는 작업이 급격히 확장됩니다.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에는 능숙한 편이 아니지만, 촬영 현장이나 준비 과정처럼 명확한 목적이 있을 때는 오히려 더 잘 소통합니다. 그래서 제 사회적 삶은 대부분 촬영 현장에서 이루어진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시 편집실로 들어가면 또 다른 방식의 고독이 시작됩니다. 후반 작업은 사람들과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밀도 높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컬러 그레이딩조차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영화의 본질과 직결된 작업입니다. 어떤 장면이나 컷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결국 모든 과정이 영화의 ‘핵심’을 향해 있습니다. 그걸 경험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홍보를 위해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 역시, 이 영화와 작별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세상에 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이 모든 과정은 제 안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