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처음 한국을 찾은 뒤 60여 년간 변화하는 사회와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기록해온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Kuwabara Shisei). 사진가로서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의 개봉을 맞아, 하나의 시대를 남기는 일과 그가 믿는 사진의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9월 2일,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이 개봉했습니다. 오랫동안 카메라 뒤에 서온 선생님이 이번에는 촬영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완성된 영화를 마주하는 감회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영화의 내레이션 원고를 직접 쓰고 읽었는데, 평소 말하듯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더군요. 한두 시간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면 어렵지 않았을 거 같은데 정해진 문장을 소리 내어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완성된 영화에서 지금의 제가 걷는 모습을 보는 거 조차도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고요. 하지만 그런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담겨야 지금의 저를 기록한 영화가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꾸미지 않은 모습에서 이 영화만의 리얼리티가 생기는 거겠죠.

1964년에 처음 한국에 오셨다고요. 당시 바라본 풍경 가운데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면요?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던 길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당시에는 도로가 제대로 포장되지 않아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크게 일었어요. 한국전쟁 정전 후 11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 경제도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고요. 그 풍경을 보면서 전쟁이 한 사회에 얼마나 깊고 오래 흔적을 남기는지 실감했습니다. 이듬해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촬영했고, 이후에는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게 됐죠. 돌이켜보면 처음 마주한 풍경이 오랫동안 한국을 바라보게 한 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나라를 바라보며 카메라가 향하게 된 장면도 자연스레 달라졌을 듯합니다. 한국의 변화와 함께 선생님의 시선은 어떻게 이동해왔나요?

1960년대에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나 베트남 파병처럼 당시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을 주로 기록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근대화와 경제성장, 민주화로 시선이 넓어졌고, 도자기와 같은 한국의 예술과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시대가 변하는 만큼 제가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도 계속 달라졌습니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뒤에는 이곳이 더 이상 취재를 위해 찾는 낯선 나라만은 아니게 됐고요. 개인적인 인연이 더해지면서 한국을 오래 바라볼 이유도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보도사진가로서 격변의 현장을 오래 지켜온 만큼, 셔터를 누르기 망설여지는 순간도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마음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이 충돌할 때 지켜온 태도가 있다면요?

매번 갈등하지만 그런 순간에는 셔터를 한 두 번만 누르려고 해요. 카메라를 내려놓고 돌아선다면 기록해야 할 순간을 외면하게 되는 거고, 보도사진가로서 제 역할도 다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마음으로는 망설여도 결국 셔터를 눌러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이 지닌 숙명이겠죠. 어쩌면 프로로서 감당해야 하는 잔혹함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 넘게 사진을 계속 찍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처음에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며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을 남기는 일이 제게 갖는 의미도 조금씩 달라졌죠. 눈 앞에서 벌어지는 순간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기록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 역시 사진가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결국 제게 사진은 생업에서 시작해 한 시대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둘러싼 환경 또한 선생님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신 때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이미지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지금, 사진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을까요?

한 장의 이미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사진은 눈앞의 현실을 기록하고 사실을 증명하는 매체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도 얼마든지 사진처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럴수록 사진이 처음 품고 있던 시간과 사실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진의 얼굴>의 제작진은 과거 사진 속 인물을 움직이게 하거나 없던 장면을 덧붙이는 식으로 이미지를 가공하지 않았어요. 제가 남긴 순간에 허구를 더하지 않고 그대로 영화에 담아준 점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사진이 <사진의 얼굴>을 통해 지금의 관객에게 닿는 일은 더욱 뜻깊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마음이 남기를 바라나요?

젊은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구나” 하고 지나온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일본 관객에게도 이웃나라 한국이 어떤 시간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전하고 싶고요. 제 사진과 이 영화가 두 나라의 관객에게 건네는 작은 기록이자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