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봉주르 레코드에서 귀여운 걸 봤다. ICE CUBE나 LL COOL J 같은 골든에라 힙합 뮤지션들의 카세트테이프 진열장. 그 아래엔 소니와 협업한 ‘테이프 MP3 컨버터’가 놓여 있었다. 테이프의 음원을 MP3로 바꿔주는 장치다. 왜 처음부터 MP3를 다운로드하면 되는 것을 대체 왜 테이프를 사서 MP3로 바꾸나?
지난 6월 열린 서울레코드페어에서는 ‘카세트 특별전’을 마련해 코가손,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 등의 카세트테이프 한정판을 판매하기도 했고, 에미넴이나 블링크 182 등의 뮤지션은 테이프를 내놨거나 내놓을 예정이다. 잔인하게 얘기하자면, 21세기에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겠다는 건 그냥 ‘힙질’이다. 음악이 뮤지션에게서 우리 귀에 도달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다.
대체 왜 테이프를 듣느냐? 아마도 아날로그를 신봉하는 마음 때문일것이다. 녹음 저장 매체는 크게 카세트테이프, 바이닐 레코드(LP) 등의 아날로그와 CD 또는 하드디스크 등의 디지털 매체로 나뉜다. 아날로그 매체는 음원의 파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예를 들어 LP의 홈을 아주 자세히 보면 음원의 파형이 그려져 있는데 이걸 재생하면 바늘이 그 홈을 따라가면서 음의 형태를 다시 뽑아낸다. 테이프도 마찬가지.
그러나 CD나 MP3, 스트리밍 등의 디지털은 이 파형을 매우 유사한 디지털 정보(0 또는 1)로 바꿔 저장한다. 아주 러프하게는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의 차이라고 생각하면되겠다.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음질의 손실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아날로그 신봉자들은 디지털은 절대 아날로그를 따라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곤 최근에 나온 LP나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소리가 따뜻하다’고 말한다. 멍청한 소리다. 왜? 요새 음악은 99.999%가 아예 디지털로 녹음하기 때문이다. 녹음을 디지털로 했는데 아날로그 매체에 담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태블릿 PC로 그린 웹툰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놓고 아날로그 느낌이 난다고 말하는 격이다.
물론 아주 오래된 바이닐 레코드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다. 예전에는 ‘릴투릴’이라는 거대한 레코드 장치에 아날로그 형식으로 녹음을 했었다. 너바나가 <네버마인드>를 낼 때까지만 해도 모든 뮤지션이 ‘인류 최초의 컴퓨터’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이 거대한 레코더로 녹음을 했으니 아날로그로 녹음한 음원을 아날로그 매체인 LP나 카세트에 옮기는 게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나온 바이닐 레코드를 좋은 장비로 감상하면 CD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다만, 카세트테이프는 그런 장점마저도 없다. 카세트테이프는 예민하기가 개복치 같아서 습기나 열에 손상되기도 하고, 재생하면 할수록 테이프가 늘어져 파형 사이에 잡음이 생기는 등 아주 까탈스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실되는 음질이 아날로그의 장점 따위는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렇게까지 욕을 퍼부었음에도 사람들이 테이프를 듣는 이유는 일단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디 밴드 선결은 몇몇 트랙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릴 테이프(녹음용 테이프 장치)를 한 번 거치는 과정을 넣었다. 나는 이 밴드를 인터뷰할 때 왜 그런 헛수고를 하느냐고 물었다. 어쩌면 선결 김경모의 대답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개의 악기가 쌓이면 (디지털과) 확연하게 다른 질감이 납니다.” 그러니까 같은 테이프라도 내가 만든 음원과 다른 사람이 만든 음원이 다르단 얘기다.
다른 매력도 있다. 간혹 리본이 카세트 플레이어에 끼어서 심하게 늘어난 경우엔 ‘강’이라는 발음이 ‘그아앙’으로 들리는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친구에게 빌려준 테이프를 돌려받을 때 “너도 ‘루징 마이 릴리전’을 제일 많이 들었나보더라. 그 부분만 테이프가 늘어났던데?” 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 작은 매력들에 더해 ‘21세기에 워크맨’이라는 희귀성을 생각하면, 테이프의 음질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