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마망(Petite Maman)
개봉 2021.10.07.
등급 전체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프랑스
러닝타임 72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인적 드문 어느 시골 마을로 향한 여덟 살 소녀 ‘넬리’. 그곳에서 엄마 ‘마리옹’과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를 만나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한다. 지난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셀린 시아마 감독이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따뜻하고 섬세한 그의 상상력이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모든 세대가 동일한 영화적 경험을 하고,
동일하게 존중 받길 받을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쁘띠 마망>은 그러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쁘띠 마망>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영화인가?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을 떠올렸다. 나이가 있는 이들은 자신의 부모나 모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아이들은 각자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영화 속 할머니는 사실 10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인물이다. 그리고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중에는 또 다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로 인한 상실감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었을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의 상실을 다룬 영화다.
장편 데뷔작 <워터 릴리스>부터 지난 해 큰 주목을 받았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까지. 그간의 작품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과 욕망, 소통과 이해에 주목해왔다. <쁘띠 마망>은 그보다 단출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쁘띠 마망>은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다소 결을 달리하는 영화가 맞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영화다. 특히 다양한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가족의 이야기로 확장시켰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지난해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영화가 가진 힘에 대해 몸소 느꼈다.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모든 세대가 동일한 영화적 경험을 하고, 동일하게 존중 받을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쁘띠 마망>은 그러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특히 가족들간의 관계에 대해 더 섬세하게 다뤄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반적인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렬한 카타르시스나 격렬한 감정의 굴곡 대신, 더 잔잔하고 깊이 있는 감정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했다.
각각 ‘넬리’와 ‘마리옹’을 연기한 조세핀 산스, 가브리엘 산스는 실제 쌍둥이 자매이자 <쁘띠 마망>이 첫 영화인 신인 배우들이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이들을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
나는 캐스팅을 쉽게 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번 캐스팅 과정 역시 굉장히 수월했다. 처음에는 쌍둥이보다도 자매를 캐스팅하고자 했기 때문에 SNS에 관련한 캐스팅 공고를 올렸다. 가브리엘과 조세핀이 오디션에 참여한 첫번째 팀이었는데 이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큰 고민 없이 함께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기억에 남는 촬영 현장에서의 에피소드가 있나?
촬영의 모든 순간이 인상 깊게 남아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어 감회가 남달랐다. 촬영을 하는 동안 리허설을 일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촬영 첫날 현장에 도착해서부터 연기와 영화에 대해 배워 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 베이스도 없던 상태에서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구축해간 것이다. 가브리엘과 조세핀은 촬영을 할 때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즐기기 시작했다. 영화라는 언어를 터득해 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넬리와 마리옹은 시간을 초월한 만남을 가진다. 이 때 극적인 시간의 이동보다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음에 초점을 둔다. 덕분에 영화가 판타지적 요소를 담고 있음에도 담담하고 차분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설정을 택한 이유가 있나?
<쁘띠 마망>에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자체가 이동의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시간을 여행하는 동시에 모든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화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초월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싶었다. 보통 시간 여행이라 하면 과거나 미래로 이동하는 것을 떠올리지 않나. 그보다 다른 누군가와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경험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영화의 전통적인 문법을 깨고자 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에는 영상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영상미를 위해 특별히 취하고자 하는 작업 방식이 있나?
우선 나는 각본을 쓸 때 시간의 흐름대로 구상하지 않는다. 먼저 신 위주로 생각한 뒤 하나의 신에서 다른 신으로 넘어갈 때의 리듬감을 고려하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임팩트를 주기 위해 음악적 요소를 사용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다 특정 신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을 때 음악으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것이 어떤 미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택한 방식은 아니다. 그보다 영화를 하나의 음악으로 생각하며 접근하려 한다.
최근 사회적, 기술적 변화로 인해 영화와 TV 드라마의 경계가 많이 무너졌고, 극장이 설 자리는 눈에 띄게 사라졌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관객들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내 작품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작은 스크린 사이즈를 고려해 와이드 샷을 더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영화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나 역시 충분히 생각하고 대응해 나가고 있다. 사실 이제는 극장이 아니더라도 얼마든 영화를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만큼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거다.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계를 살리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런 기술적인 변화에는 충분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야말로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TV 시리즈들과 영화는 문법부터 다르다. 그러니 작품이 주는 감상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임팩트가 무엇일지에 대해, 더 나아가 영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나의 모든 관심은 여성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그렇다 보니 구체적으로 왜 꼭 여성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영화에서 여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영화에서 여성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
나의 모든 관심은 여성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그렇다 보니 구체적으로 왜 꼭 여성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영화에서 여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나를 억눌러왔던 사회적 규범 같은 개인적인 경험까지 고려해 보다 원론적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려 한다.
영화를 매개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특정한 메시지보다도,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마음의 동요가 일었으면 한다. 영화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욕망의 실체를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거다.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 알고자 하는 욕망, 실험하고자 하는 욕망 등. 각 개인에게 내재된 욕망의 모습은 다양하다. 관객들이 캐릭터들의 여정에 함께 함으로써 각자가 갖고 있던 욕망을 자연스레 마주하길 바란다.
앞으로 영화를 만들어 감에 있어 잃고 싶지 않은 자세가 있다면 무엇인가?
항상 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들 때는 물론이고, 인생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