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에세이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등 수 권의 걸출한 시집을 쓴 시인 최승자의 첫 번째 에세이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가 개정되어 출판됐다. 몇 편의 새 에세이를 더해 32년 만에 나온 것으로 이 책에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시대와 삶에 대한 최승자의 고심이 담겨있다.

절규에 가까운 시 편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 시인은 차분하게 삶에서 잡아챈 조각과 질문들을 풀어낸다. 유년 시절 잊히지 않는 일들과 들썩이던 갈망,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로우리만치 사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던 예술가의 무대 밖 모습을 보는 듯하다. 어떤 환경과 지점들이 맞부딪쳐 그와 같은 작품들을 쓰게 되었는지 상상해 보는 일 또한 가능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에서 출발하는 질문들은 그가 속한 사회와 맞닿아 있다. 즉 시인과 우리는 같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외로움과 지루함으로 누워만 있었던 20대,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와 타협하게 되는 30대, 여러 죽음을 마주하며 확장되는 삶에의 이해와 공허감이 동시에 뻗쳐 오는 40대…. 이 자연스러운 삶의 방향에서, 혹은 이 방향이 자연스러워지기 위하여 자주 빠지곤 하던 진창에서 시인은 매번 비관하지만 그 끝자락은 필연적으로 삶을 향한 열심에 닿을 수밖에 없음을 안다.

시인은 염세와 허무의 깊은 곳까지 잠수했다 바닥을 치고 눈부신 형광등 아래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은 오래 묵힌 편견에 스스로 돌을 던지는 일이 되기도 하고 명시가 탄생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빠지고 부딪치고 다시 삶을 향해 돌진하며 시를 써왔기에, 최승자는 근래의 시들이 잊고 있는 시의 본질적인 울림을 지적하기도 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과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사유와 시류를 내다보는 통찰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최승자는 지금 병원에서 산다. 정신의 안과 밖을 돌고 돌아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 걸터앉았다. “시를 뭐하러 쓰냐고? 그럼 시를 뭐하러 안 쓰지?” (‘시를 뭐하러 쓰냐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