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회 칸국제영화제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앞서 현지시각으로 5월 23일 공개된 <헤어질 결심>이 영화제 데일리 평점 3점대(3.2점)를 받으며 경쟁부문을 둘러싼 분위기가 반등세를 보이고 있음을 전한 바 있다. 결국 이 결과는 경쟁부문의 모든 작품이 공개될 때까지 뒤바뀌지 않았다. <헤어질 결심>은 올해 경쟁부문 상영작 중 데일리 평점 최고점, 동시에 유일하게 3점대를 넘긴 주인공이 됐다. 평점이 반드시 수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헤어질 결심>의 감독상(박찬욱) 수상은 영화 미학 본연의 가치를 안팎으로 두루 인정받은 값진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제 75회 칸국제영화제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수상은 2004년 <올드보이>의 심사위원대상, 2009년 <박쥐>의 심사위원상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5월 28일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 직후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코로나로 국경이 높아졌지만 우리는 극장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영화인들이 영화관과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 믿는다.” 한국 감독이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것은 2002년 <취화선>으로 임권택 감독이 수상한 이후 두 번째다.

 

제 75회 칸국제영화제 브로커

영화 <브로커> 스틸컷

또 하나의 기대작이었던 <브로커>의 경우는 어땠을까. 영화는 육아를 지속할 수 없는 이들이 아기를 두고 가는 베이비 박스를 소재로 한다. 아기를 다시 찾으러 온 엄마 소영(이지은), 돈을 받고 새로운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넘기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 일당이 예기치 못한 여정을 함께 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현행범으로 이들을 체포하고자 하는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도 이들의 뒤를 쫓는다.

현지에서 만난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이 <요람>에서 <베이비 박스 브로커>, 다시 <브로커>로 바뀐 과정을 들려줬다. 한국에서 2년간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취재를 진행하면서 ‘이 이야기는 결국 아이를 둘러싼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깨달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제목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브로커들을 좇는 수진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룬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브로커를 좇던 수진은 아기가 거래되길 바라는 자기 자신이 브로커와 다르지 않은 입장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브로커>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과 나란한 선상에 놓이는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고레에다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과의 관계를 탐구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만든 이후 ‘여성 역시 출산 후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성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어느 가족>의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반대로 <브로커>의 소영은 아이를 낳았지만 어머니가 되지 않고자 하는 여성이다. 감독은 노부요와 소영이 서로를 마주 보는 자매 같은 관계라고 설명한다.

 

5월 26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의 상영이 끝난 이후 12분간 기립박수가 터졌다. 다만 공개 직후 반응은 엇갈렸다. ‘아이를 사고파는 일에 관련된 모두가 가장 인간적인 결론을 따른다’(버라이어티), ‘선택된 가족에 대한 세밀한 초상화’(뉴욕타임스) 등의 호평이 있는가 하면 ‘고레에다 감독의 보기 드문 실책’(가디언), ‘스토리텔링이 아쉽고 그리 깊이 있지 않다’(토탈 필름) 등의 의견도 나왔다.

실제로 <브로커>는 해외 프로젝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다. 고레에다는 이전에 프랑스에서 현지 배우들과 촬영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을 선보인 바 있다. 서로 다른 나라의 역량 있는 연출가와 배우들이 협업한 긍정적 사례지만, 앞선 작품과 이번 작품 모두에서 감독의 개성은 옅어졌다. 심오한 주제를 둘러싼 연출이 평이하게 느껴지는 사이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들 각자의 역량이 장면의 완성도를 좌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칸영화제는 상현을 연기한 송강호에게 올해의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그가 연기한 상현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처럼 보이지만,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을 돈을 받고 넘기는 브로커이기도 하다. 후반부에는 예상치 못한 결말에 가닿으며 관객에게 서늘한 뒷맛을 안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브로커>의 상영 다음날 칸 현지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인간이 가진 본연의 비애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송강호가 제일이었다”라는 말로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송강호는 “인간과 삶에 대한 가장 냉정하면서도 동시에 보고 나서는 우리가 어떤 따뜻함을 원하는지 느끼게 하는, 고레에다 감독 작품 특유의 철학을 담은 세계에 충실한 얼굴이 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반적 내실 부족했던 경쟁부문

제 75회 칸국제영화제 토리와 로키타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올해 경쟁부문은 유럽 내 사회문제를 넘어 하나의 견고한 주제가 된 이민자 문제를 다뤘거나(토리와 로키타, R.M.N), 인생에 대한 회고와 노스탤지어를 중심에 둔 작품들(아마겟돈 타임, 노스탤지어, 디 에잇 마운틴스), 두 번째 장편 영화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신예 감독들의 선전(클로즈, 마더 앤 선), 거장 감독들의 신작(헤어질 결심, 브로커,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등 소재 및 장르적 태도, 감독의 경력과 국가 등 다양한 면에서 균형적인 시선을 보여줬다.

그러나 전체 작품이 공개된 이후 각 작품의 면면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다. 특히 프랑스 영화의 경우 ‘자국 영화 껴안기’라는 질책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쥘리아 뒤크르노 감독의 <티탄>이 안겨준 파격과 신선함을 떠올릴수록 더욱 그렇다. <브라더 앤 시스터>, <포에버 영>은 경쟁부문에서 자웅을 겨루기엔 심각할 정도로 함량 미달인 연출을 보여줬다.

 

제 75회 칸국제영화제 스타즈앳눈

영화 <스타즈 앳 눈> 스틸컷

심사위원 대상(공동수상)을 받은 클레어 드니의 <스타즈 앳 눈>의 경우 1980년대의 소설을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변경해 중앙아메리카의 봉쇄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미국인 저널리스트와 영국인 사업가의 상황을 그린다. 현실 세계의 정치 사회적 환경보다 관능적이고 섹슈얼한 묘사들을 더욱 중요한 가치로 두는 이 영화에서 팬데믹이 어떠한 배경으로 기능하는지는 끝까지 모호하다. ‘명망 높은 프랑스 감독의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자격이 없는데도 경쟁부문에서 상영되는 실책’(데드라인)이라는 지적은 타당하게 느껴진다.

다르덴 형제 감독에게 돌아간 75주년 기념 특별상 역시 차라리 체면치레를 위한 공로상의 변형에 가까워 보인다. <토리와 로키타>는 분명 좋은 영화다. 여기에는 실제 남매 관계가 아니지만 서로를 책임지고 끌어안으려는 이민자 아이들이 등장한다. 돈과 문서가 인간을 물건 줄 세우듯 하는 사회의 룰 안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이 캐릭터들은 가장 먼저 낭떠러지로 밀려난다. 다르덴 형제의 시선은 여전히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자 엄연한 현실을 냉정하게 파고든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질문도 남긴다. 그렇다면 이후에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영화는 현실의 직시를 제시하는 역할에 그치고 말 것인가. 이는 무관에 그친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R.M.N>에도 적용 가능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어느 정도 덜어주는 작품은 뜻밖에도 비평가주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폐막작이었던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여고생 소희(김시은)와 그를 둘러싼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유진(배두나)의 이야기다. 비인간적 노동환경과 취업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특성화고의 현실을 여실히 담아낸 작품이다. 동시에 소희와 같은 아이들이 겪는 일에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 내기를 주저 않는 ‘진짜 어른’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유진을 통해 사회적 죽음을 방조한 자들에게는 책임을 묻고, ‘다음 소희’가 될지 모를 누군가에게는 홀로 너의 고통을 떠안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존재를 비춘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바뀔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하는 대신 조금 더 나아가보려고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못내 이 영화를 미더운 시선으로 보게 한다.

 

제 75회 칸국제영화제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영화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스틸컷

경쟁부문에 ‘문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있었는가. 그것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물론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자본주의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꼬는 문제적 블랙 코미디다. 다만 감독의 전작 <더 스퀘어>와 나란히 두고 보면 단순히 미술계에서 패션 업계로, 갤러리에서 초호화 유람선과 무인도로 배경을 옮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정작 이번 영화제 최고의 문제작으로 이야기될 것 같았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는 예상보다 얌전한(?) 작품이다. 후반 20분 분량의 적나라한 묘사에 대한 감독의 친절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뚜껑이 열린 이 영화는 파격적인 영상 탐구의 영역보다 언어로 설명하려는 것이 더 많은 작품에 가까웠다. 차라리 오늘날 크로넨버그식 실존주의 탐색의 결과물이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작품이 제시하는 배경은 인류가 생태계 변형의 비극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미래다. 수술을 ‘새로운 섹스’의 방식으로 인식하는 인물들을 앞세운 초현실적 에로티시즘의 추구, 신체 변형과 훼손을 고약한 농담 같은 퍼포먼스로 구현한 방식은 크로넨버그의 초기작과의 연결점을 가지며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에 없던 파격, 인간의 진화에 대한 문제적 고찰이라고 하기엔 변덕스러운 상상력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조금 냉소적인 시각일지 모르나, 올해 경쟁부문의 내실이 전반적으로 부실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올해 칸영화제의 가장 큰 당면 과제가 팬데믹 이전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었음을 상기할 때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내년부터 이뤄져야 마땅한지도 모른다. 올해 칸영화제는 오늘날 ‘시네마’의 본질과 극장의 의미 그리고 영화제라는 축제의 기능과 기쁨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드는 무대로서의 역할에는 충실했다. 올해의 개막작이었던 <파이널 컷> 역시 같은 맥락의 선택으로 보인다. <아티스트>(2011)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신작으로 일본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의 리메이크다. ‘생방송 원테이크 좀비영화 만들기’라는 황당한 미션을 통해 영화 만들기의 즐거운 고단함을, 영화를 향한 사랑을 긍정하는 작품이다. ‘일본 걸작 좀비영화의 생명력 없는 프랑스 리메이크’(인디와이어) 등의 혹평도 따랐지만, 영화라는 매체와 극장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자는 올해 칸의 메시지에는 맞춤이었던 셈이다.

 

제 75회 칸국제영화제

2022 칸국제영화제 수상 리스트

황금종려상 |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심사위원대상 | <클로즈>(루카스 돈트), <스타즈 앳 눈>(클레어 드니)
심사위원상 | <EO>(예지 스콜리모프스키), <디 에잇 마운틴스>(샤를로트 반더미르히, 펠릭스 반그뢰닝엔)
감독상| <헤어질 결심> 박찬욱
남우주연상 | <브로커> 송강호
여우주연상 | <홀리 스파이더>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각본상 | <보이 프롬 헤븐>(타릭 살레)
75주년 특별 기념상 | <토리와 로키타>(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