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기상이변은 경신된다. 매일 전해지는 폭우와 폭설, 폭염의 경보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무분별하게 생명을 죽이고, 먹고, 낭비하고, 버린다. 그 가운데 절망을 딛고 내일에 오늘의 재난을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라, 재앙의 시나리오대로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내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늘, 우리, 이곳임을 믿는 새 시대의 새 사람들. 이들이 쟁취할 내일에 대하여.

장은나

1994, 유튜브 채널 <비건먼지> 운영진, 마케터(AE) (@veganmonji)
미디어와 문학을 전공한 뒤 마케터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에게 비거니즘을 쉽고 재미있게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유튜브 채널 <비건먼지>(@veganmonji) 운영진이자 비건 식단을 기록하고 비건 마케팅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사랑과 보호 속에서 살아온 인간 동물인 내가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고,
나 홀로 풍요롭기 위해 다른 존재가 겪는 폭력을 모른 척하고,
지금의 생태 학살과 기후 위기 문제를 무시하고 지낼 수는 없지 않나.


행동의 시작 
2019년 여름, 친구의 추천으로 비건 관련 영화와 책을 보면서 자연스레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다. 비거니즘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실천할수록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공부를 이어가며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나아가 내가 소비하는 모든 것이 어디에서 오고 가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시에서 편하게 소비하고, 이동하고, 쓰레기를 버리며 살아온 지난 내 삶의 방식이 얼마나 지속 불가능한 방식인지 깨닫게 됐다. 비건과 함께 레스 웨이스트를 지향하게 되었고 생태와 지속 가능성, 기후 위기 이슈에 점점 더 관심을 갖고 다방면으로 실천하게 됐다.

최대 관심사 동물권과 식문화. 비건이 되기 전에도 유기 동물 입양 봉사를 하거나 이를 위해 행동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등 비인간 동물의 권리에 관심은 있었지만, 지금 내가 아는 동물권보다는 훨씬 제한적인 개념이었다. 인간에게 살아갈 권리가 있듯이 인간이 아닌 동물, 지구상의 다른 모든 존재도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지속 가능하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행동과 실천 개인적으로 먹는 것과 입는 것, 사용하는 것 모두 비건, 레스 웨이스트, 크루얼티 프리로 소비하려고 노력한다. 평소 텀블러와 다회 용기를 들고 다니고, 2~3년 전부터 새 물건 안 사기도 시도하고 있다. 속옷과 양말을 뺀 모든 옷을 빈티지로 구매하는데 주로 당근마켓, 빈티지 마켓, 나누장 등에서 산다. 지금 사는 집에서 쓰는 세탁기와 냉장고, 옷장과 책상, 책장까지 모두 본가에서 가져오거나 당근마켓에서 구매했다.

주변과 나누는 방법 아직도 비건 하면 연상되는 특정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마르고, 요가 하고, 샐러드 같은 클린 푸드 먹고, 환경 운동 하고….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경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나 또한  예전에는 그렇게 오해했다. 그래서 지금은 주위 사람들에게 스테레오타입을 깨부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나답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즐겁게 비건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나는 빵과 과자, 튀긴 음식은 물론 술도 좋아하는 ‘정크 비건’이다. 월급날을 기다리면서 주말에 취미로 영상을 만드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가끔은 비건에 실패하기도 한다. 채식 옵션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클라이언트와 식사를 하게 되는 날도 있으니까. 이런 내 모습을 통해 비건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다. 비건이 되어도 케이크도 라면도 떡볶이도 포기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모두 비건으로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비건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 모두 충분히 지향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다.

낙담 속 희망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은 ‘사랑’에서 오는 것 같다. 어릴 때 몸이 무척 약했는데 지금의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나를 살리기 위해 애쓴 가족과 곁에서 의지가 돼준 친구들 덕분이다. 사랑과 보호 속에서 살아온 인간 동물인 내가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고, 나 홀로 풍요롭기 위해 다른 존재가 겪는 폭력을 모른 척하고, 지금의 생태 학살과 기후 위기 문제를 무시하고 지낼 수는 없지 않나. 어떤 존재는 평생 철창에 갇히거나 죽을 날이 정해진 채로 태어나고, 안온하고 주체적인 삶을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이 매일매일 죽임을 당하지 않나.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큰 자유와 특권을 누린다. 움직일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힘과 체력, 시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희망을 채운다. 기대했기에 실망하고, 시도했기에 낙담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