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기상이변은 경신된다. 매일 전해지는 폭우와 폭설, 폭염의 경보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무분별하게 생명을 죽이고, 먹고, 낭비하고, 버린다. 그 가운데 절망을 딛고 내일에 오늘의 재난을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라, 재앙의 시나리오대로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내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늘, 우리, 이곳임을 믿는 새 시대의 새 사람들. 이들이 쟁취할 내일에 대하여.
서사라
1999, 지구자판기 대표 (@refill_jigu)
환경을 위한 소셜 벤처 ‘지구자판기’를 이끌고 있다. 재활용이 어려운 샴푸와 세제 용기를 리필할 수 있는 자판기를 일상 가까이에 설치해 리필 스테이션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편하고, 쉽고, 저렴해서 환경보호 활동을 하는 세상. 일일이 따져보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동의 시작 수리산 인근에 거주하던 어린 시절 꽃을 따 꿀을 맛보고, 가재를 잡고,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며 자연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후에 이사를 간 동탄신도시에서는 옛날의 놀이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을 만나며 단순히 이사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환경을 위한 소소한 실천 방법은 물론 탄소 배출량 계산법과 생태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 등 많은 이론을 알려주셨고, 다양한 실습 기회도 제공해주셨다. 그 덕분에 어린 나이에 꽤 적극적인 환경운동가로 살았다.
최대 관심사 환경보호의 접근성. 초등학생 때부터 일상에서 지구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자취를 하며 이를 크게 실감했다. 모르는 것도, 귀찮은 일도, 돈이 꽤 드는 방법도 많아 제대로 실천하기가 힘들었다. 환경을 무척 사랑하는데도 지속 가능한 실천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환경보호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실제로 2030세대의 절반 이상이 환경을 걱정하는 ‘에코 워리어’라고 하지만, 그 걱정이 실제 환경보호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도로 미미하다고 한다.
행동과 실천 우리가 쓰는 샴푸나 세제 용기는 대부분 재활용할 수 없다. 그런데 빈 용기를 깨끗이 씻어 리필 스테이션을 찾아가면 샴푸와 세제의 내용물만 무게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 구매할 수 있다. 나는 한 리필 스테이션을 1년 넘게 이용했다. 하지만 국내에 많지 않은 탓에 이용에 한계가 있었다. 리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구자판기를 만들었다. 아파트 단지나 기숙사와 가까운 곳에 리필 스테이션이 자판기처럼 자리하면 24시간 내내 간편하고 저렴하게 환경보호 활동을 할 수 있다.
주변과 나누는 방법 지구자판기 사업 초반에는 나와 팀원들이 자판기 모양의 박스 안에 들어가 직접 리필해주었다. 이런 활동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리필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지구를 지키자는 말을 건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느꼈다. 우리는 지구자판기라는 소셜 벤처로서 사람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사나 캠페인,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플로깅 캠페인, 제로 웨이스트 제품을 만드는 체험, 환경 관련 기업을 모은 플리마켓 등이다. 내게 지속 가능성을 알려준 선생님처럼 재미를 기반으로 한 체험을 통해 이론을 알려주면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아도 지구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을 조금씩 품게 할 수 있다.
우리가 바꿀 내일은 편하고, 쉽고, 저렴해서 환경보호 활동을 하는 세상. 일일이 따져보면 말이 안된다.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단 나만의 노력이 아님을, 이런 노력이 모여 눈덩이처럼 점점 더 불어날 것임을 알기에 그런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