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진이 전하는 과거의 교훈과
현재의 절망, 미래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

 

 

 


 

 

 

Veterans

참전자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촬영하고 대화를 나누며 비극의 조각을 모았다.

그들은 전쟁 당시 장교, 죄수,
교도관, 의료인, 기술자 등이었다.

어떤 역할을 맡았었든,
오늘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를 촬영한 프로젝트 ‘Veterans’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오래전부터 역사 전반과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다양하게 접하며 하나의 사건이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기꺼이, 혹은 마지못해 참여한 사람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어떤 방법으로 세계 곳곳의 참전자를 찾았나? 프로젝트 초반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만 다루려고 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참전자를 수소문했다. 이후 전직 군인 단체나 이들에 관한 글을 썼던 기자 등에게도 직접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가 사람들한테 점점 알려졌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참전자를 추천하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작업해가며 더 많은 참전자의 삶에 궁금증이 생겼다. 5년의 시간과 노력을 쏟은 결과, 24개국의 참전자 1백10여 명을 만났고, 그중 약 50명의 얼굴이 사진집 <Veterans: Faces of World War II>에 담겼다.

기억에 남는 참전자의 말이 있나? 영국의 한 전직 군인이 독일군을 비정하게 죽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이 사실이 기록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전쟁이 야기한 잔혹 행위를 한 경험이 그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한편 어떤 이들은 내게 무언가를 숨기거나 특정 주제와 관련한 대화를 회피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역사적 기록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난 참전자들의 삶에 대해 듣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조명하고 싶었다. 참전자들이 전쟁터로 향한 건 자의가 아니라 의무였던 경우가 많았다. 이 프로젝트가 점점 잊혀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상기시키기를, 전쟁이 개인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신의 고국 우크라이나가 지금 전쟁을 치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약 1년이 흘렀다. 이 전쟁이 2014년에 일어난 크림반도 병합으로부터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8년간의 무력 충돌 이후, 지난 2022년 2월에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전쟁을 겪으며 강해졌지만, 그 힘의 대가로 끔찍한 기억을 안게 되었다. 야만적인 침공은 그들의 생활 터전과 문화유산, 자연환경을 처참히 파괴했고, 인명 피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국가 간 갈등으로 발발한 전쟁이지만, 이를 끝내기 위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러시아의 공격에 철저히 맞서거나 투쟁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걸고 싸우기로 했다. 불행히도 이 전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재앙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Bakhmut Disabled

바크흐무트에 남은 장애인들

우크라이나 바크흐무트(Bakhmut)의
최전방 마을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남았고,
그중에는 장애가 있어 피란을 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반문하며,
자원봉사자 등으로부터 받은 생활용품을
집 안에 쌓아둔 채 살아가고 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당신의 사진에도 극장을 대피소 삼아 지내는 이들이 담겨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의 행렬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던 무렵에 촬영한 사진이다. 그 와중에 난민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사진 속 공간인 ‘레샤 쿠르바사(Les Kurbas)’ 극장을 운영하는 극단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단원들은 기꺼이 극장을 내어주었고, 난민들은 이곳에 며칠간 머무른 뒤 우크라이나 서부에 자리잡거나 다른 나라로 더 멀리 떠나갔다.

난민을 돕는 활동이 충분했다고 보나? 몇몇 기관은 기대 이상으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정부나 비정부기구(NGO)가 피란처를 적절히 제공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의 요구를 무마하는 조치에 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히 지원하지 않은 이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모두가 저마다 최선을 다해 돕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마음에 깊이 와닿은 도움의 순간이 있다면?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의 난민을 수용해준 폴란드 사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다. 현재 많은 난민이 폴란드의 가정에서 함께 생활 중이다. 우리 가족은 현재 하르키우(Kharkiv)를 벗어나 독일에서 지내고 있는데, 독일의 한 가족이 그들의 집 절반을 내어준 덕분이다. 인간이 서로를 돕는다는 건 고무적인 현상이다. 절망적인 상황은 항상 희망을 필요로 하지 않나. 그 희망은 꽤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 희망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Animal Rescue

반려동물 구조하기

잃어버리거나 버려진 동물은 전쟁의
희생자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크라이나의 모든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광범위한 조직을 구축한
자원봉사자와 동물권 운동가 등이 나섰다.

구조 활동을 벌이거나
동물 보호소를 지원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Kurbas Theater

레샤 쿠르바사 극장의 난민

르비우(Lviv)에 자리한 레샤 쿠르바사 극장이
난민을 위한 숙소로 탈바꿈했다.

극단 단원들은 러시아 군대의 폭격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을 위해 극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실내에 침대와 식탁 등을 놓았고,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지역 주민들의 물품 기부가 이어졌다.

 

 

 

The War Babies

전쟁터의 신생아들

러시아의 공격이 거세지자 키이우(Kyiv)의 임산부와
그의 가족은 도시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의료 시설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부터 약 두 달 사이,
이 지역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예년에 비해 3백60여 명이 적은 1백62명이었다.

 

피란을 떠나지 못한 장애인, 임산부, 반려동물을 담은 사진도 인상 깊다. 이들은 스스로 안전을 도모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극심한 위험에 처해 있다. 난 항상 주목받지 못하거나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 화두를 꺼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최대한 전쟁과 그 이면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고통을 직면해야 하는 전시 상황에 카메라를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인간은 불의를 보면 바로잡기를 원하지 않나. 내 사진이 전하는 누군가의 희생, 만행, 희망을 통해 미래의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사진에 담긴 존재 중 일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난 이들이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기를, 그 이름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이들이 느낀 공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심판대에 세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 이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전쟁은 결국 끔찍한 비극이니 말이다.

인류는 이미 전쟁을 여러 차례 겪었고, 그로 인한 고통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전쟁이 계속 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권력을 가진 폭력적인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문명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다. 선거권이 보장된 국가라면, 권력자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지 못하게 할 힘이 시민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묻고 싶다. 지난겨울 러시아가 발전소를 비롯한 에너지 관련 시설을 표적으로 대규모 공격을 자행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전기 부족 사태와 정전이 빚어졌다. 많은 가정이 한동안 난방도 음식도 인터넷도 없이 생활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더 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들이 지금 선택한 건 ‘생존’이 아닌 ‘적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