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공부

writer 버둥(뮤지션)

 

20대 들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린 시절 보았던 엄마를 이해하는 데 쓰였다. 어린 시절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 동네에서 군것질도 못 하고 산과 들에서 동생과 시간을 보낼 때면 왜 우리는 도시에 살지 않는지, 그깟 과자 좀 먹는 게 뭐가 문제인지 알 길이 없어 분통이 터질 때도 많았다. 과자도 원 없이 먹고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 사는 지금은 엄마가 왜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왜 멀리하게 했는지, 복잡한 도시에서 사는 걸 왜 피해왔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을 하면서도 내 삶을 유지하는 게 어떤 장점과 단점을 안기는지,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면서 30대의 엄마 아빠 생각을 내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아이들을 상대로 독서 논술을 가르치던 엄마는 몇 년 전 아동문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지금도 대학원 사람들과 꾸준히 스터디와 수업을 이어가고 있고, 얼마 전에는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요즘 한류 열풍이 전 세계에 불고 있으니 경력을 쌓아 해외에 나가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살아도 좋겠다, 가족끼리 작은 축하 파티를 하던 중 나온 이야기에 나의 모험심과 용기는 어쩌면 엄마에게서 왔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나는 당연하겠지만 닮은 점도 많고 다른 부분도 아주 많다. 겁도 많고 매사 조심하다가도 마음이 가는 일이 생기면 남들이 보기에는 과감한 결정도 거침없이 내리고 일단 파고드는 면, 한번 시작한 일은 남들보다 아주 길게 끌어가는 모습은 엄마와 내가 똑같지만 공부에 있어서는 아주 다르다. 나는 일단 실무에 뛰어든 후 막히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그제야 공부하는 편인데, 엄마는 공부 그 자체를 좋아한다. 석사 졸업 논문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러 일본에 갈 정도로 애정을 쏟기도 한다. 일정을 맞춰 함께 다녀오면서 곁에서 관찰한 엄마는 당신 생각대로 잘 흘러가지 않아 속상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하려던 일을 마무리했다. 논문을 쓰며 고통스러워하는 엄마가 신기했다. 석사과정을 밟는 내 또래 친구들이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수를 하면 할수록 바보 같은 글이 또 나오는 게 어이없다고 말하는 엄마는 그만하고 싶다기보다는 더 잘하지 못하는 본인에게 답답한 마음이 더 커 보였다. 사정과 여건이 되면 논문을 계속 쓸 것만 같은 엄마를 보며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참 다르다 싶다가도, 1집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2집 일정을 짜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모녀지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마가 본인의 일과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인지하기 쉬워졌다. 아동문학에 관심이 많고 연구와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하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어쩌다 아동문학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고 좋아하게 되었는지, 연구를 계속 해나가는 건 어떤 면이 좋아서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알아가는 건 우리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저 나와 비슷한 나이 많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독립하기 전 아침을 함께 먹은 날이면 엄마와 한참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와 엄마 모두 자기 생각과 다른 이야기에 특별히 거부감을 가지거나 고집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주제를 넘나들며 본인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어떨 때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기도 하지만, 아침을 같이 먹고 설거지를 하며 오늘, 내일 때로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로 우리가 그동안 서로에게 얼마나 가까운 존재였는지, 함께하는 것만으로 큰 배움을 선사하는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지금껏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 이제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것 또한 엄마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인생은 본인이 개척하는 부분도 물론 있지만 주변 환경과 운을 무시할 수 없다. 엄마는 그 흐름을 외면하거나 거스르려 하지 않고 잘 다스리며 살아왔다. 그 흐름 중에 내가 나름의 역할을 한 것 같아 기쁘고 뿌듯하다. 나의 흐름에서는 남들에 비해 하고 싶은 일을 비교적 빨리 찾았고, 어마어마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나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다. 엄마는 본인과 닮은 듯 다른 나의 흐름을 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교육과 응원으로 빠르게 나의 일을 찾았으니 나의 모습이 엄마의 흐름에 영향을 준 건 그 나름대로 엄마가 만들어낸 삶의 순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늦어도 하고 싶은 일을 인지하고 해내는 점이 대단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나도 많다고 보긴 어렵지만 적잖은 나이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익숙하던 것을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게 되었다. 종종 지난 버둥의 일을 돌아보면 지금 한다면 쉽게 선택하지 못할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이 어떤지, 실패의 수렁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다 알고도 원하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용기는 늘 존경스럽다.

엄마는 비평을 쓰고 싶어 한다. 나 같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글을 쓰고 수습하며 공부해나가겠지만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오래 공부하고 연습하며 나아간다. 엄마의 글이 기대된다. 분명 어딘가는 나와 비슷하고, 또 어딘가는 놀랍도록 다르겠지. 엄마는 본인이 예술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떤 예술인보다 날카로운 취향과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평이라는 장르와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딸이니까 날카로운 비평도 엄마를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여린 작가도 많으니 조금 살살 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래오래 지금처럼, 각자 좋아하는 일을 나누며 응원하며 지내고 싶다. 응원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