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일을 같이 하면
좋을까? 나쁠까?
writer 안백린(셰프)
나의 지인 중에 엄마랑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엄마랑 3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엄마랑 일한다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흔든다. 엄마는 1964년생. 환갑을 앞둔 엄마가 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너무 고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심심찮게 듣기도 한다. 정말 나는 ‘악덕 사장’ 딸이고, 엄마는 ‘불쌍한’ 직원일까?
불편하고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일하면 좋은 점도 많다. 사업 운영자로서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가 믿을 만한 직원을 구하는 일인데 엄마는 두말할 여지 없이 그냥 믿을 수 있는 직원이다. 한순간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지라도 그것이 절대 나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또 내가 아플 때도, 바쁠 때도 엄마는 묵묵히 내 일까지 감당하는 우렁 각시 직원이다. 음식과 와인부터 서비스와 돈 관리까지 쥐꼬리만 한 월급에도 엄마는 모든 일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준다. 여기까지는 좋은 점.
엄마와 같이 일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주로 엄마의 신념에서 기인한다. 인문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자신만의 신념을 지녔다. 그 덕에 엄마는 우리의 레스토랑 ‘천년식향’의 멋진 스토리텔러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강한 신념 때문에 부딪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첫 출근 날 엄마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집에서만 입는 후줄근한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잠옷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옷에 놀란 나와 달리 엄마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외관보다는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엄마의 입장에서 후줄근한 바지는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얼마나 근사하게 우리의 음식과 와인을 전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 능력이 외관에 가려지는 것이 속상했던 나는 자석으로 명찰을 만들어드렸지만 그조차도 기어코 달지 않으셨다. 엄마는 명찰을 달지 않아도 당당하면 된다며, 명찰 보고 리스펙하는 것은 ‘사기’라며 깔깔 웃고 만다.
이렇게 신념이 강한 분이다 보니 인스타그램에 글을 쓸 때도 참으로 공격적이다. ‘천년식향’은 비건을 표방하지 않고 순식물성 메뉴를 선보이는 ‘발효바’로, 더 다양한 이들이 비건에 대한 편견 없이 천년식향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목표인데, 간혹 엄마는 ‘그렇게 고기 타령 하는 것은 문제다’라는 식의 글을 남긴다. 물론 탄소 배출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고기 타령이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엄마의 공격적인 화법은 ‘고기 좋아하는 사람’의 언팔로잉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우리 엄마를 어쩌면 좋을까?
내가 가장 억울한 점은 엄마의 말 중 똑똑한 사람이 무지한 사람의 행동을 보며 못마땅해하는 듯한 “이렇게 해야지, 참(must, should)”으로 시작하는 꼰대 화법이다. 이 화법은 가스라이팅인지, 나를 위한 객관화된 조언인지, 혼나는 것인지 판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더 나를 억울하게 만든다(참고로 우리 엄마는 지독하게 말을 잘한다). 게다가 엄마의 말에 반발하며 토론을 하기 시작하면, 말대꾸를 넘어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대답을 아주 잘해야 한다(엄마 기준에 무시하는 어조로 들리는 순간 토론은 3시간을 넘기고 만다). 문제는 엄마가 ‘해야지’라며 조언한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엄마는 자신의 말에 ‘must/should’가 들어 있어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참고만’ 하라고 한다. 그러나 사장이기 이전에 딸인 입장에서 엄마 직원의 ‘해야지’ 화법을 듣고 어떻게 참고만 하겠는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사장과 직원의 위계와 엄마와 딸의 보이지 않는 위계가 충돌하는 순간부터 엄마로서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엄마 입장에선 당연할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이 더 나은 해결책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선 사장이 아니라 ‘사고만 내는 문제 덩어리’ 취급당하며, 나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 같아 억울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만 한 동료이자 직원은 없다. 나는 계속해서 엄마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그리고 더 나은 성공으로 보답도 하고 싶다. 물론 엄마의 꼰대 성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끊임없이 성토하는 중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