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한 · 조수정 부부

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갤러리 같은 펜트하우스를 소개한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미술 애호가 부부가 마련한 첫 번째 집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창밖으로 안산의 푸른 숲이 펼쳐지는 공간, 그곳에 자리한 컬렉션을 통해 부부가 추구하는 미술과 산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배 작가의 작품. 왼쪽의 초록색 조각은 곽철안, 오른쪽의 입체적 화병은 김미영 작가의 작품

미술 작품 컬렉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명환 가족 여행으로 간 발리 우붓에서 현지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2백 달러 내외의 작품 3점을 구입하며 첫 컬렉션을 시작했습니다. 관광객을 유인하는 기념품 그림만 가득했던 상점을 벗어나 힘들게 찾은 발리 현대미술 작가들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작품이라 더 반가웠고, 마음에 들었어요. 20만 달러의 작품 옆에 두어도 손색없는,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소장하게 된 작품은 무엇인가요? 최명환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우리 집의 작품을 세어보니 회화와 조각, 공예까지 작가 60명의 작품이 있더군요. 최근 소장한 컬렉션도 꽤 다채로워요. 붓놀림의 역동성이 느껴지는 도널드 마티니(Donald Martiny)의 입체 회화를 소장하게 되었는데, 여러 미술관의 컬렉션 이력이 화려한 미국 작가입니다. 동네 산책을 하다 연희동 뒷골목의 작은 갤러리에서 발견한 김시안 작가의 작품도 최근 우리 집에 들인 새로운 컬렉션 중 하나예요. 다른 컬렉터의 취소로 갖게 되었는데, 그래서 더 인연이 깊은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애틋한 마음이 가는 작품은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으로 다시 방문한 발리의 미술관에서 만난 아이 와야 벤디(I Waya Bendi)의 그림입니다. 발리를 자주 찾았지만 발리 전통 회화 양식인 바투안(Batuan)에 대한 감흥이 없어서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주로 찾아다녔어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발리 전통 회화 양식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벤디의 그림을 접한 이후부터입니다. 싱가포르 풍경을 담은 그의 그림을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우리 부부에게 싱가포르는 지난 10년간 거주하며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라 더욱 마음이 끌려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구매하게 되었어요. 이렇듯 우리는 계획을 가지고 수집한다기보다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작품을 모으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 컬렉터가 아니라 아트 러버라 생각하고요.

왼쪽 작품은 박서보, 오른쪽 작품은 매튜 바니의 작품. 매튜 바니의 작품은 메탈 피스의 피어남이 매혹적이다.

워낙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소장한 터라 구성과 배치 방식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두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조수정 처음에는 갤러리스트의 조언을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자신만의 시도를 해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일 거예요. 우리는 작품을 걸기 애매할 때에는 잠시 벽에 기대어두기도 하고, 이젤을 활용하기도 해요. 집의 포컬 포인트(focal point)가 되어줄 주요 작품 몇 점을 제외하고는, 벽면 한두 곳의 작품은 컬렉션할 때마다 계속해서 바꿔주면 공간 분위기도 환기시켜줄 뿐만 아니라 소장한 작품을 두루 볼 수 있어 좋아요. 우리는 다른 작품을 위한 새 못을 박을 때에도 예전 작품을 걸었던 못을 그대로 둡니다. 하얀 물감을 칠해주면 덜 보이며, 전작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도 컬렉터의 미덕이라 생각하거든요.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벽은 하얀색으로, 인테리어도 미술품이 최대한 잘 보일 수 있도록 미니멀하게 연출하는 것이 보편적 방식입니다. 최대한 미술품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작은 소품은 밖에 내어놓지 않고요. 공간의 주인공이 미술 작품이기 때문이죠.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기 드로잉 에디션.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조수정 컬렉션이 한눈에 보이는 거실이 단연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집에 가전제품이 많이 없어요. TV 대신 스크린을 활용하고 천장에 감추어 두었기에, 모든 벽에 그림을 걸어둘 수 있어요.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작품을 여러 점 설치해 두었는데, 계단을 지날 때마다 은은하게 빛이 들어오는 황선태 작가 작품의 스위치를 켜고 끄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합니다.

부부의 미술 취향이 비슷한지요? 조수정 우리의 취향은 전공과 직업만큼이나 전혀 달라요. 남편은 사색을 좋아하는 성격답게 단색조의 추상 작품 그리고 단색화 작가들을 좋아해요. 저는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계속해서 소장하고 있고요. 각자 취향이 다르긴 하지만 그 안에서 겹치는 부분도 있어 함께 컬렉팅을 하고 이를 즐기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요. 유일하게 접점이 없는 부분은 미디어 작품이에요. 저는 10년 전부터 관심을 두고 꾸준히작품을 구입했는데, 남편은 그다지 관심을 두는 분야가 아니거든요. 작년에는 자연을 소재로 한 영상미를 추구해온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의 영상 작품을 남편 몰래 구입하기도 했어요.(웃음)호환 단자가 바뀌면서 집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없어 방치 중이긴 하지만요. 언젠가는 이를 감상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이 생기기를 꿈꿔보고 있습니다.

알렉스 카츠가 1974년에 그린 우아한 인물화.

가장 아끼는 작품은 어떤 건가요? 조수정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1974년작 인물화입니다. 알렉스 카츠는 1974년부터 2008년 사이에 커미션을 받아 친구나 유명 인사를 위한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 속 주인공은 마르크 샤갈의 친구이자 엄청난 컬렉터였던 존 울리치 네프(John Ulrich Nef)의 세 번째 부인이에요. 뉴욕 사교계 유명인의 아내라는 인물의 스토리가 흥미롭습니다. 보통 카츠의 작품 속 인물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독창적으로 보일 때가 많아요. 도상이 예쁘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런데 이 초상은 아름답고 색감마저 감미로워서 보자마자 반한 작품이에요. 1974년의 인보이스가 같이 동봉되어 왔는데, 45년의 시간을 거쳐 미국 컬렉터의 집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요즘 새롭게 관심을 가진 미술가는 누구인가요? 조수정 이반 실(Ivan Seal)과 마크 라이덴(Mark Ryden)입니다. 두 작가는 고등학생인 아들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이반 실은 전혀 모르는 작가였는데,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뒤에 우리도 좋아하게 되었죠. 영국에서 활동하는 화가이자 음향 예술가인데,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정물을 그리며 꿈속을 유영하는 듯 색감이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마크 라이덴은 몇 해 전 방문한 아트 바젤의 폴 카스민 갤러리(Paul Kasmin Gallery) 부스에서 보고 기억에서 잊혀졌는데, 아들의 추천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작가입니다. 곧 성인이 될 아이들과 컬렉션을 공유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에 그 작가를 다시 재조명하는 중입니다.

사진 조각으로 유명한 권오상 작가의 아트 퍼니처가 위층 거실에 놓여 있다.

초보 미술 애호가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소장하는 것이 좋을까요? 최명환 부지런히 많이 보고, 길게 보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어요. 전시장을 돌아다닐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세계 미술의 최신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아트넷(Artnet)이나 아트시(Artsy)에서 보내주는 뉴스레터를 받으면 도움이 됩니다. 아시아 현대미술 작가만 소개하는 아트링(Artling)도 초보 미술 애호가에게는 추천할 만한플랫폼입니다. 작가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컬렉션은개인적 욕구에 의해 수집이 되기 때문에 작품 세계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에요. 그럼에도 소장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갤러리스트의 조언을 듣고 소품부터 소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작은 작품은 어느 공간에서든 감상이 가능하니까요.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사고 싶은 분께 드리는 조언도 간단합니다. 무조건 블루칩 작가를 소장하면 돼요. 그렇지만 블루칩 작품을 살 여유 자금이 없어 젊은 작가 작품부터 소장하고 싶다면, 젊은 작가 전시에 과감히 투자하며 인큐베이팅을 잘하는 화랑주에게서 산 작품이 리스크가 적다고 봅니다. 갤러리스트가 갤러리 역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면, 애정하며 키운 작가가 빛을 보는 경우를 종종 봐왔거든요.

마지막으로 미술과 산책을 좋아하는 두 분이 추천하는 미술 산책 코스가 있다면요? 최명환 우리가 오래 거주했던 싱가포르의 명소를 추천할게요. 내셔널갤러리 싱가포르(National Gallery Singapore)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기획전은 늘 근사해요. 옛 군사 시설을 개조한 길먼 배럭스(Gillman Barracks)와 항구 창고 시설 탄종 파가 지구에 주요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데, 이쪽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해요. 한국에서 알려진 STPI 갤러리(STPI Creative Workshop and Gallery)를 방문하고, 근처 싱가포르강을 따라 모여있는 식당을 가는 것도 멋진 일정입니다. 유명한 로버트슨 콰이(Robertson Quay) 거리와 가까워 싱가포르 야경까지 즐기기에도 좋은 코스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