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엘제이
GALERIE LJ
리티카 머천트
Rithika Merchant
파리 3구에 위치한 갤러리 엘제이는 올해 처음으로 키아프 서울에 참여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페인계 미국 작가 루한 페레스(Lujan Perez)를 비롯해 국내에서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작가들의 신작을 전시한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 섹션에 선정된 인도 아티스트 리티카 머천트(Rithika Merchant)의 작품을 주목할 만하다. 1986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리티카 머천트는 2008년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회화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인도, 스페인, 독일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8년과 2020년에는 패션 브랜드 끌로에 협업하며 활동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현존하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 신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탐구하는 작가로 인류가 공유하는 상징체계와 자연의 모티프를 가져와 신비로운 이미지로 구성한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일 작품은? 이전 작품에서 구축해온 이야기를 잇는 일련의 회화다. ‘Birth of a New World’(2020)는 우리가 지구에 저지른 짓을 깨닫고 하늘, 물, 땅에서 해답을 찾는다. 또 다른 작품 ‘Return to Stardust’(2021)는 별에서 답을 찾는 좀 더 원초적인 시간을 응시한다. 지혜를 구하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보는 ‘Festival of the Phoenix Sun’(2022)도 있다. 이어 최신작인 ‘Terraformation’(2022~2023) 시리즈에서는 마침 내 지구를 떠나 다른 곳에서 유토피아적 세상을 재건한다. 나는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그곳의 다양한 버전과 형태, 우리가 진화할 수도 있는 여러 생명체를 탐구한다.
당신의 작품은 특유의 색채와 패턴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안긴다. 주로 종이에 구아슈, 수채 물감, 잉크로 작업한다. 위에 덧칠하거나 지울 수 없는 수채화는 더욱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특히 좋아한다. 수채화로만 얻을 수 있는 완성도가 있으며, 채도가 낮고 색이 바랜 듯 반투명한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접힌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작품의 구조 혹은 발판으로 표현하고 싶다. 보통 그림을 그리기 전에 종이를 접어 특히 주의를 끌고 싶은 부분이나 색을 칠하고 싶은 부분을 표시해둔다. 일종의 가이드 역할인데, 대개 작품의 구성에 따라 종이를 접는다. 이로써 마치 퀼트 같은 질감을 낼 수 있다. 그림을 완성한 후에는 잡힌 주름을 따라 다시 접어 보관한다. 기하학적 모양으로 작게 접으면 그림이 하나의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종이 자체가 내러티브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영감의 원천을 꼽는다면? 자연은 모든 작품과 세계를 연결하는 공통분모다.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 유기적 형태,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우리 신체에서 찾을 수 있는 것과 닮았다는 사실은 커다란 영감을 준다. 시각적으로도 이러한 요소를 작품에 녹여내는 것을 좋아한다.
작품 속 여러 상징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화적으로 특수한 상징보다는 눈, 태양, 달, 식물 이미지처럼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징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인물 또한 의도적으로 인종, 성별, 민족을 유추하기 어렵게 그린다. 관람객의 출신에 상관없이 내 작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면 좋겠다.
키아프 서울을 찾은 관람객이 당신의 작품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기를 바라는가? 작품에 자신을 이입하고,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피앤씨갤러리
PNC GALLERY
박형근
Park Hyung Geun
2012년 대구에서 개관한 피앤씨갤러리의 키아프 서울 부스에서는 작고한 작가를 포함해 세대와 장르를 초월하는 작가 6인을 집중 조명한다. 한국 실험 미술 1세대 작가에 속하는 이명미,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감각적 회화로 표현하는 곽훈을 필두로 2001년에 세상을 떠난 한국 실험 미술 2세대 작가인 김용수, 신체주의적 태도로 자신의 정체성과 신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권오봉, 1993년생으로 심리적 표현을 캔버스 위에 풀어내는 신진 작가 장지수를 기억해야 한다. 하이라이트 섹션으로 소개되는 사진 작가 박형근은 1990년대 후반부터 근대성, 영성, 공생 등의 주제를 고찰하며 ‘금단의 숲’(2011), ‘테트라포드’(2014~2017), ‘제주도’(2005~2022) 연작을 발표해왔다. 철학적 사유와 매체 실험을 지속해온 박형근이 키아프 서울에서 보여줄 작업은 불, 바람, 빛 등 자연 본연의 작용으로 형성된 세계와의 물리적 접촉인 ‘걷기’에 집중한 ‘유동성의 지형학(Fluidic Topography)’이다.
금산갤러리
KEUMSAN GALLERY
쿤
Kun
키아프 서울 하이라이트 섹션에 선정된 쿤 작가는 금산갤러리 부스에서 만날 수 있다. 쿤 작가가 주목하는 주제는 끊임없이 몸집을 불리는 현대인의 욕망. 영화, 게임 광고, 소셜미디어 등 시대를 반영하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를 편집해 캔버스에 빼곡하게 붙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미술은 나에게 욕망의 언어다. 그것을 통해 비로소 나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고민은 현재 내가 가장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수수께끼와도 같다”라고 밝힌다. 쿤 작가의 활동 범위는 캔버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공간, 브랜드, 아트 토이, 가상현실, 음악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과 융합에 관심을 두고 KT, 파리바게뜨, 푸마, 클래시 오브 클랜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PACE: WILLING N DEALING
남진우
Nam Jin U
전시 이외에 작가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온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이 키아프 서울에 첫 출사표를 던진다. 남진우, 이세준, 정현두 3인의 참여 작가는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불가능한 풍경에 도달하고자 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1984년생인 이세준의 화면에서는 서로 다른 요소가 충돌한다. 추상과 구상이 동시에 존재하고, 극단적일 정도의 차이를 지닌 명도와 채도를 함께 활용해 시각적 차이가 강조된다. 화면 위에서 서로 다른 요소가 충돌함으로써 감각과 틈을 인식하게 한다. 그 반면 정현두의 회화는 작가의 제스처를 반영한 직접적인 흔적으로 이뤄진다. 그는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색과 이미지를 지우고 또 그려낸다. 하이라이트 섹션에 참여하는 남진우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은유하는 상상 속 캐릭터가 등장하는 서사를 회화에 담아낸다. 그는 평면에 부조, 콜라주, 제단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형식적 실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부스에서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과 감각으로 그려낸 동시대 젊은 작가의 회화 양상을 눈여겨봐야 한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일 작품은? 두 괴물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서사를 담은 회화 작품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작품을 통해 대왕오징어를 비롯해 여러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는 일종의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나의 작업은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 의해 괴물로 내몰리는 존재, 그런 세상을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들에 관한 서사시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분명하게 구분 지으려 하는 이 세상을 괴물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 더럽혀진 존재들을 치유하고 구원해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함께 더없이 아름답게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
괴물 외에 ‘영웅’ 또한 꾸준히 등장한다. 당신에게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가? 대왕오징어가 나를 상징한다면, 영웅은 나를 고독하게 한 다수(혹은 집단)를 상징한다. 간단히 말해 대왕오징어가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 의해 괴물로 내몰린 존재라면, 영웅은 그들이 떠받드는 세상에 의해 스스로 괴물이 된 존재다.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활용한 작품은 한눈에 보기에도 손이 많이 갈 것 같다. 작품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회화 작품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우선 내가 상상하는 서사가 담긴 드로잉(종이 위에 콜라주)을 에스키스(밑그림) 삼아 얇은 광목천에 이미지를 옮겨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두 종류의 광목천을 사용하는데 두껍고 커다란 천은 배경을 그릴 바탕용이고, 얇고 작은 천은 바탕 위에 오려 붙일 콜라주 용도다. 소요 시간은 작품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가로 길이가 3m 정도 되는 대형 회화는 3주 이상 시간이 든다.
평면에 콜라주를 더하거나 아예 입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단순히 회화 작가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는데, 형식적 실험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상상한 서사를 옛 영웅 서사(혹은 성경, 신화)처럼 고전적인 느낌으로 웅장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크풍의 고전 양식으로 장식한 오페라극장이나 성당의 제단화를 참고해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실험을 시도하게 된 것 같다.
키아프 서울을 찾은 관람객이 당신의 작품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기를 바라는가? 서사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에게서 조금 끔찍하지만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