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야
콰야의 작품은 밝은 색채가 빈번하게 등장함에도 덤덤하게 느껴진다.
작업 노트에도 쓰여있듯, 인물은 대체로 애매한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힘주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 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양립적인 것은 되레 작품에서 늘 솔직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와 역할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집사보다 고양이들이 작업실에 더 오랜 시간 머물겠어요. 웬만하면 저도 작업실에 있는 편이라 거의 비슷할 거예요.(웃음) 노란 고양이가 ‘코코’, 회색 고양이가 ‘키키’인데 같이 살아온 10년간 다양한 형태로 함께해왔죠. 집에서도 같이 지내봤는데 제가 알레르기가 심해서 잠잘 때만 떨어져 있어도 훨씬 낫더라고요. 아쉽더라도 잠깐 동안 분리해야 오랫동안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작품을 긁어놓지는 않나 보네요. 보통 작품은 위에 걸어둬요. 고양이들이 올라갈 공간이 없고 벽을 향해 뛰지는 않으니 높이 걸어두면 안전하거든요. 유화 작업이라 건조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건조할 때는 위에 올려두고, 보관할 때는 반대편으로 돌려서 하고 있죠.
얼마 남지 않은 키아프 서울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나요? 전시를 준비하거나 작업할 때, 어떤 이야기를 정해두기보다 작품을 모아두고 구성하다 보면 당시 제가 생각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담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전에는 아트 페어를 준비하면서 어떤 하나의 이야기로 명확하게 구성해본 적이 없는데, 지난 페어부터는 구성을 시도하고 있어요. 올해는 기존 작품 한두 점과 함께 새 작품 위주로 선보이게 될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화두에 몰입하고 있나요? 지속 가능한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작업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제가 보내는 일상에서도 늘 하는 생각이죠. 개인적으로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을 테고, 요즘 사회적으로 빈번하게 화두가 되는 ESG에 관한 키워드도 해당되는 것 같아요.
환경에 대해 자주 생각하나 봐요. 작업하면서 점점 더 그 방면으로 생각이 명확해졌어요. 제가 하는 작업이 제게는 창작물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쓰레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 가운데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변화한 것도 있나요? 작업을 대단히 오래하진 않았지만 초창기에는 단순히 그리는 재미라는 측면에 더 집중하면서 작업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이야기를 담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춰 작업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리는 재미는 확 줄어들더라고요. 물론 어떤 이야기를 담는 것 역시 제게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최근에는 그리는 재미를 좀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것을 시도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의도적으로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는 흔치 않고, 그냥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을 해나가고 있어요.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거든요. 세라믹 작업을 하게 된 계기도 이와 비슷해요. 지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면 가끔 그 세계에서 도망가기 위해 다른 것을 시도하는데, 내년에도 좀 더 새로운 작업의 형태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뮤지션 최백호와 함께한 전시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하여>에서 공개한 일기장에는 ‘울리는 미술’에 관한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적어둔 말인가요? 울리는 미술은 김환기 작가님의 일기에 적혀 있던 말이에요. ‘음악과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 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 할 것인가’라는 글귀였던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 미술이라는 영역이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그 글에 굉장히 깊이 공감했어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작품에도 누군가를 울리는 미술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나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데, 제가 하고 있는 페인팅은 울리는 미술이라기보다 직관적으로 ‘좋다’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장르 같아요. 좋다고 느껴지는 누군가의 작품을 보면 나도 얼른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 반면 다른 장르에 걸쳐 있는 미술의 영역을 볼 때는 감동과 맞닿는 경우가 있어요. 이를테면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 작품 같은 것들이죠.
어쩌면 다른 장르와 협업의 형태로 새로운 울림을 줄 수도 있겠네요. 다양한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협업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 있어요. 더군다나 혼자 작업하다 보면 어딘가에 갇힐 때가 많기 때문에 협업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저와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분과 해도 좋고, 장르는 같아도 다른 생각을 가진 분과 함께해도 좋겠어요. 앞서 말한 환경적인 이슈를 함께 고민해봐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이처럼 보인다거나 인물의 포즈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때문에 서정적인 정서를 느끼는 감상을 종종 볼 수 있어요. 본인 작품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을 접하며 새로운 생각을 얻기도 하나요? 보통은 제가 생각한 메시지나 의도와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다르다고 당황스러운 것은 아니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있어요. 우선 긍정적인 건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상상해주실 때 저 역시 너무나 재미있어요. 음악이나 영화도 그렇지만 창작물은 창작자의 손에서 떠날 때, 그 상태가 100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 피드백이 더해지면서 완성되는 거니까요. 그 반면에 사회적 이슈나 무거운 담론을 담은 작품을 내놨을 때, 이런 것들이 차단되고 작업적 가치로만 논하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인데, 이런 순간에는 제가 하는 작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죠.
작업의 의미를 다시금 들여다보면 작업을 하는 이유 또한 되짚게 되나요? 작업하면서 그 이유를 꾸준히 찾는데, 지금은 제 스스로의 관심사를 표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아요. 그래서 작가라는 존재 자체가 축복받은 직업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항상 있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청자가 존재하잖아요. 작업하고 전시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작가는 즐거운 존재가 돼요.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한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죠.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함이에요. 작품 활동 역시 어디까지나 제 이야기를 작품을 매개로 보여주는 거니까요. 외부적인 요인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으면서 진솔하지 못한 작업을 한다면 의미 없는 활동을 하는 게 아닌가 해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솔직하게 작업에 임하는 것이 영순위인 것 같아요.
정서적 측면에서 좀 더 작업에 빠져들게 만드는 순간도 있나요? 언제 더 특별히 잘된다는 건 없지만, 저는 너무 즐거운 순간에는 작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작업은 무언가에 결핍이 있기 때문에 작업으로서 그런 부분을 보완하려고 하는 과정이거든요. 만약 이런 결핍이 전혀 없이 모든 게 좋은 상황이라면 작업을 안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면에서는 부족함이 스스로를 일깨우기도 하죠. 꼭 개인적인 결핍이 아니어도 하루를 보내면서 알게 되는 전 세계의 뉴스나 사회적 이슈가 개인의 영역까지 들어오는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개인의 삶 깊숙이 이런 뉴스들이 침투하다 보면 자연스레 결핍이 생기죠. 휴대폰 메모장에 가끔 기록을 하는데, 요즘은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개인을 볼 때, 사회라는 토대 안에서 개인이 가지는 역할이나 생각에 관한 내용도 종종 적게 돼요.
작가로서 꿈꾸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작업을 하는 데 대단한 목표나 꿈은 없어요.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 작업 결과물을 보면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좋지 않을까 해요. 물론 그 안에서 최소한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작업자라면 더 좋겠죠. 교류가 전혀 없다면 작업하면서 의미도 없고 굉장히 외로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떤 작용이 계속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