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또렷한 취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이들의 시선은 귀중한 경로가 된다.
날 선 감각을 지닌 25명의 문화 예술계 인물에게서
요즘 보고, 듣고, 읽고, 사고, 즐기는 것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일상

마치 도쿄 어느 골목 어귀에 있을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북동의 드립커피 전문점.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이 집 커피를 한 입 마셔보면 단단한 내공을 품은 커피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장님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있다. 대부분의 메뉴가 훌륭하지만 특히 아포가토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주얼과 맛으로 사로잡는다. 이세희 (티디렉터)

 

도너 케밥(Doner Kebab)

올해 초 베를린에 갔을 때 매일 새벽 이곳에서 케밥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먹고 싶은데 나는 한국에 있고, 도너 케밥은 베를린에 있으니 하루에 한 번 정도 그맛을 떠올릴 뿐이다. 그리고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더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박세영(영화감독)

 

야쿠모 사료(Yakumo Saryo)

오가타 신이치로(Ogata Shinichiro)는 본인이 태어난 나라의 전통문화를 작업에 녹여내는 일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가 만든 레스토랑 야쿠모 사료 또한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오래된 일본 주택을 개조해 완성했다. 예약이 필수인 곳이라 연 락 후 찾아갔는데, 디자이너의 취향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있었다.일본고유의정서가밥먹는행위하나로고 스란히 느껴졌다. 단순히 밥을 먹었다기보다는 한 편의 짧은 일본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참새 (미술가)

 

 

통도사

 억지로 드러내려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한국 전통문화를 좋아해 그 근본이 되는 공간인 사찰을 즐겨찾는다. 그중 경남 양산에 자리한 통도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사찰로, 한국의 3대 사찰 중 한곳으로 꼽힌다. 자주 접할 수 있는 서울의 절들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오래된 나무들, 벗겨진 페인트의 은은한 색감,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이 형언하기 어려운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절의 분위기와 크기에 압도당한 건 이곳이 처음이었다. 화창한 날도 좋지만, 특히 비 오는 가을 날에 찾아가보길 권한다.

 

조리

일식을 기본으로 한 안주를 파는 성수동의 작은 퓨전 이자카야. 아담한 공간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맛 있는음식을먹기좋은공간이다.안주를먼저고르면그 에 어울리는 전통주를 추천해준다. 안주로는 새우쇼마이와 오징어튀김을 추천한다. 최수진(공예 작가)

 

현대음률

한국 노래만 틀어주는 LP 바. 신청곡은 받지 않고 사장님이 직접 선곡하는데 다음에 어떤 노래가 나올지 설레며 듣게 된다. 무엇보다 스피커 소리가 쨍하지도 작지도 않게 잘 세팅되어 있어 귀가 편하다. 최수진(공예 작가)

나이슬리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전 일하던 망원동의 ‘주오일식당’ 사장님이 강릉에 차린 브런치 카페. 주오일식당에서 그랬듯 정성 들여 만든 메뉴와 고즈 넉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포근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나의 최애 메뉴는 버섯수프. 버둥(뮤지션) 

미도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진가 이윤호를 잘 느낄 수 있는, 을지로의‘신도시’와 다른 방식으로 귀여운 공간이다. 커피는 창의적이고 맛있으면 그만인 쪽 이라 보통 테이크아웃만 하는데, 미도파에서는 어쩐지 주저앉고 만다. 정우영(프리랜서 에디터)

 

카바 라이프

물건을 보면서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만족감을 얻는 공간이다. 다큐멘터리에 비유하 자면 BBC 어스(BBC Earth)가 아니라 마이크로 코스 모스(Micro Cosmos)를 보는 듯한 내밀한 감상을 안긴다. 정우영(프리랜서 에디터) 

 

최순우 옛집

동네 산책길에 종종 들르는 곳으로 국립중 앙박물관 4대 관장이던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이 거주 했던 근대 한옥이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문 위쪽을 올려 다보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는 글귀가 적 혀있는데,‘문을닫으면곧깊은산중’이라는뜻으로이 곳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표현이다. 단아하면서 기품있는 한옥은 고요히 침잠해 사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이세희(티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