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누드(Tokyo Nude)’ 프로젝트의 소개를 부탁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급속도로 발달하며 우리 삶의 터전이 온라인 세상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원격 공동체의 시대에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도시의 역할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도시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증도 생겼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도쿄의 풍경을 사진으로 촬영한 후 리터칭 기술을 활용해 창문과 간판, 에어컨 실외기, 옥외광고 같은 인간의 흔적을 최대한 지웠다. 구조물만 펼쳐진, 문명의 옷을 벗은 나체의 도시를 담아낸 이 프로젝트에 ‘도쿄 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본의 여러 도시 중 도쿄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가 있나? 도쿄는 내게 혼란스러운 도시다.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도쿄로 이사해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심의 열기가 숨이 막힐 듯한 두려움을 안겼다. 하지만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이러한 양면성에 흥미를 느껴 도쿄를 기반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을 다루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도쿄의 어떤 장면을 마주했을때 셔터를 누르게 되었나? 초반에는 매력적인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며 지은 건물들이 마치 도시에 깊이 뿌리내린 삶의 형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도시의 분위기를 비롯한 추상적인 개념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건물 하나를 대상으로 삼더라도 웅장한 물체처럼 촬영하지 않고 주변과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포착하려 한다.


“구조물만 펼쳐진,
문명의 옷을 벗은 나체의 도시를 담아낸
이 프로젝트에 ‘도쿄 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속 건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 잡은 모습을 보니 철저한 계산하에 그린 회화 같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 미술을 전공했다. 당시 색채 활용에 몰두한 나머지 구도를 잡는 실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시 곳곳을 사진으로 남긴 뒤 콜라주 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이상적인 구도를 발견하는 데서 더욱 큰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회화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야마토에(yamato-e)’ 등 일본 전통 미술의 선명한 색채와 평면적 구도의 영향을 받아 사진에서 기하학적 형태를 강조하게 되었다.

사진을 리터칭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리터칭은 진짜와 가짜, 현실과 비현실을 오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작업을 거쳐 탄생한 장면은 보는 이에게 현실에 대해 질문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를 줄 수 있다. 의심과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건 창작 활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리터칭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나? 모든 의사소통이 사라진, 고요하고 공허한 세계. 사진을 촬영한 후 지우고 싶은 부분을 골라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더 나아가 건물의 배색을 다채롭게 바꾸거나 하늘에 구름을 합성하는 식의 수정도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완성되었다. 당신이 완성한 장면들은 실제 도시보다 아름다워 보이기도,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가상 도시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중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인간의 입장만 고려한다면 디스토피아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사라진 도시가 어떤 신비로움을 지닐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내 작업은 인간의 공백이 자아낸 불안감을 그리는 동시에 도시를 인간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먼 훗날 도시의 풍경이 당신의 사진 속 모습과 비슷할 것 같나? 비슷할 수도 있지만, 각 도시의 인구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도시는 기술의 진보와 사회 변화에 따라 기존의 기능에서 탈피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발전시킬 테고, 물리적 기능에서 벗어난 창조적 도시가 더 많이 나타날 듯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도시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래야 도시 속에 있는 나 자신과 주변 환경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시에서 인간의 소통이 사라지고 있음을 실감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 물론 온라인으로 교류하면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보다 온라인 친구와 맺는 관계를 더 중시하는 시대지만, 실제로 만나야만 나눌 수 있는 교감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 정보가 아닌 감정은 상대를 마주해야 오롯이 전달되지 않나. 만약 인간이 서로 대면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결국 소통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인터넷을 통한 교류가 아무리활발하더라도 도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도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온라인 세상으로 완전히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을 거라 믿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도시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모든 도시는 똑같이 아름답다. 아주 혼잡한 곳도, 적막한 곳도 인간이 만들어낸 삶의 신호들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을 테니까. 앞으로 도쿄를 넘어 여러 도시를 찾아가며 이 프로젝트를 확장하고 싶다. 최근 서울에서 ‘서울 누드’를 진행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