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2021년 3월 비플(Beeple)의 NFT가 6천9백3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저마다 NFT의 가능성과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며 ‘미래 산업은 메타버스와 웹 3.0을 중심으로 개편될 것’이라 전망했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가 NFT로 작품을 민팅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술 분야 내 NFT 거래는 암호화폐의 가치 폭락과 맞물려 곤두박질했고, 작가와 갤러리, 아트 페어가 앞다투어 소개한 NFT에 대한 논의는 점점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NFT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19일,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NFT가 블록체인에 최초로 입성했다.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작업했던 폴록은 작업실 바닥에 작품과 비슷한 물감 자국을 남겼다. 잭슨 폴록 스튜디오는 이 바닥을 1987년 떼어내 보존해왔으며, 고화질로 촬영한 후 네 점의 NFT 시리즈 ‘Beyond the Edge’로 민팅했다. 각각 1백25 개의 에디션으로 실물 프린트와 NFT를 함께 제공했는데, 5백 점이 모두 판매되어 45만 달러가 넘는 판매 총액을 올렸다. 대가의 작품을 그대로 스캔해 NFT화한 디지털 트윈을 판매하면 비난받기 일쑤였는데, 폴록의 NFT는 그가 전성기 주요작을 작업하며 남긴 흔적을 아카이빙하고 NFT화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2023년을 기점으로 주요 미술관들도 NFT를 소장하는 추세다.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플의 첫 실물 작품이자 NFT인 ‘Human One’을 2천9백만 달러에 낙찰받은 컬렉터는 이 비디오 조각을 카스텔로 디 리볼리, M+, 크리스털 브리지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대여해 순회한다. 아트바젤 홍콩을 통해 NFT와 비디오 조각으로 구성된 비플의 신작 ‘S.2122’은 난징 데지 미술관(Deji Art Museum)에 판매되었다.
NFT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시작한 갤러리는 페이스갤러리로, 우르스 피셔(Urs Fischer)와 제프 쿤스(Jeff Koons)를 비롯한 소속 작가들과 협업해왔다. 석유나 기술 관련 산업이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온 존 제라드(John Gerrard)도 페이스갤러리의 플랫폼 ‘페이스 버소’를 통해 제너레이티브 아트 NFT ‘World Flag’를 발표했다. 정복을 의미하는 국기를 검은 연기로 대체한 대표작 ‘Western Flag’를 UN에 가입된 1백95개국의 국기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사막을 배경으로 국기가 연기처럼 흩날리며 해당 국가의 시간과 계절을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Western Flag’는 최근 LA 카운티 미술관이 소장한 최초의 NFT로 기록되었고, 비슷한 주제의 지도 NFT ‘Petro National’은 올해 퐁피두센터에 소장되었다. 주요 작가들이 NFT를 민팅하며 실물을 함께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블록체인에 정보를 기록하는 NFT의 본질에서 나아가 파일이나 실물 작품을 제공하는 식이다. 작품의 원본성과 진품성이 결국 ‘실물성’과의 공존으로 귀결되는 양상이 아이러니하다. 결국 컬렉터의 소장 욕구를 충족하는 전략이다
AI
AI는 문학, 음악, 광고, 디자인 등 문화 부문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미하다. 그럼에도 주요 기관은 일부 작가들의 의미있는 활동을 소개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기관의 컬렉션 데이터나 기후나 자연 관련 데이터를 비롯한 시각 이미지를 AI로 분석해 실시간으로 생성한 영상을 선보여온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개인전을 올해 10월 말까지 개최한다. AI가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이미지와 데이터를 학습해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이 작업은 로비의 빛, 기후, 관람객의 움직임 등을 반영하는 장소 특정적 설치이다.
국내에서는 노상호 작가가 최근 AI 툴이 생성한 이미지를 참고한 회화 작업을 발표하고 있다. 인터넷에 부유하는 이미지를 회화로 연동해온 그로서는 기술을 활용하며 편집자이자 매개자로서 이미지를 해석해 옮기는 과정이 당연했을 터다. AI를 활용한 그의 신작은 올해 아라리오갤러리와 일민미술관, WWNN 등에서 전시되었다. 코리 아칸젤(Cory Arcangel) 역시 지난 6~7월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직접 프로그래밍한 봇이 기사를 머신러닝하고, 이미지를 자동 검색하며, 음성을 결합해 유튜브에 업로드한 영상 8백50여 점을 싱글 채널로 상영했다.
한편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AI 랩’은 2023년 발표한 리포트에서 작품 창작에 활용되는 크리에이티브 AI의 실천 사례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머신러닝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즉, 시각적 결과물에 집중하는 작업이다. 둘째는 머신러닝 도구가 넓은 맥락에서 사회를 반영하고 작품에 개입하는 ‘상황적’ 사례다. 이 리포트는 두 번째 사례가 1964년 마셜 맥루한이 ‘(예술은 사회를 향한) 초기 원격 경고 시스템’이라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며 최근 비평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창작 활동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하며 관련 소송이 늘고 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과 관련한 저작권 적용 여부, AI가 학습한 데이터에 포함된 저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공정 이용 원칙 적용 여부가 큰 쟁점이다. 이 외에 주요 AI 기업들이 윤리 담당 인력을 해고하는 사건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기술 발전으로 전에 없던 개념이 생기면서 법적 해석, 사회적 합의가 자리 잡기까지 혼란과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GAME
2012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팩맨>, <테트리스>,<심즈> 등 게임 14점을 소장한다고 발표하며 게임이 예술인지에 대해 첨예한 비평이 오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게임을 주제로 한 미술관 전시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 시간 기반 예술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율리아 슈토셰크 파운데이션(JSF)은 개관 15주년 기념전 <Worldbuilding: Gaming and Art in the Digital Age>를 올해 말까지 개최한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기획한 이 전시에는 작가 약 40팀이 참여해 ‘시각예술가가 게임을 대하는 방식’을 폭넓게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게임 사회>는 ‘게임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 문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는 전시로,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과 뉴욕 현대미술관, 스미스 소니언 미술관이 소장한 게임 작품 등을 소개한다. 게임이 지닌여러 층위의 문법, 즉 게임의 서사와 디자인, 상호작용 등이 참여자의 가상 및 현실 세계에 개입하는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커미션 작업인 김희천 작가의 ‘커터3’는 온라인 게임 제작 프로그램 ‘유니티(Unity)’를 활용해 만들었는데, AI ‘인스턴트 너프(Instant NeRF)’를 통해 CCTV에 찍힌 관객을 게임캐릭터로 실시간 변환한다.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의 말처럼 “게임처럼 느끼는 디지털 경험과 이 과정에서 인지하는 시간과 장소, 리얼리티에 대해 질문한다”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안 쳉은 2022년 리움미술관 개인전 <세계건설>에서 AI와 게임 엔진을 활용한 라이브 시뮬레이션 게임과 인공 생명체를 다룬 애니메이션을 소개했다. 김아영은 지난해 갤러리현대 개인전에서 소개한 <딜리버리 댄서의 구>로 2023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의 최고상 ‘골든 니카(GoldenNica)’를 수상했고, 이를 게임 시뮬레이션으로 제작해 지난해 C/O 베를린 디지털페스티벌에 출품했다.
게임이 웹 3.0과 메타버스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며 NFT와 AI 역시 다른 영역에 게임의 요소를 부여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게임은 문화 및 창조산업 영역에서 어느 분야보다 참여자의 개입과 역할이 중요한 매체라는 점에서 확장 및 활용 가능성이 높다. NFT와 AI, 게임을 활용한 창작 활동의 결과물은 큰 맥락에서 디지털 아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지털 아트 관련 담론과 비평이 활발해지기 위해 기술과 시각예술의 언어와 미학을 모두 이해하고 이를 글과 전시, 담론으로 이끌 수 있는 매개자의 역할 역시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