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가 꽃피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특별 기획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영화의 르네상스’에서 5편의 단편과 7편의 장편을 합해 총 12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사실 한국 관객들에게 인도네시아 영화는 낯선 영역이다. 하지만 97년의 역사를 지닌 인도네시아 영화는 식민지 시절을 거쳐 독재와 검열의 시기를 견뎠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와 동질감을 지니고 있으며, 1980년대 전성기와 1990년대 하락기를 겪은 후 2000년대엔 독립영화 제작이 활성화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적으로 급속하게 회복하고 있는 점도 인도네시아 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소개되는 작품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올해까지, 최근 인도네시아 영화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구성으로 준비된다.

<임페티고어>

<자바섬으로의 순례>

상영작 중 가장 오래된 영화는 몰리 수리야 감독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 영화는 시각 장애를 지닌 두 청소년의 풋풋한 로맨스로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올해 뉴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인 에드윈 감독의 2017년 영화 <(불)건전한 연애>도 부산을 찾았다. 이 영화 역시 10대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으로, 사랑과 집착에 대한 이야기다.

진지한 드라마로는 <자바섬으로의 순례>가 있다. BW 푸르바 네가라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1940년대 인도네시아의 독립 전쟁 때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나선 90대 할머니의 이야기다. <사라의 수난>은 최근 인도네시아 영화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스마일 베스바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린다.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서 그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며, 어머니조차 기억 상실증에 걸려 그를 남처럼 대한다.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패션 디자이너 오스카 라와타라가 주인공을 맡았다.

<바스리와 살마의 네버엔딩스토리>

<가스퍼의 24시간>

<(불)건전한 연애>

인도네시아 장르 영화의 최신 경향도 만날 수 있다.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시가렛 걸>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다. ‘잊을 수 없는 담배맛’을 만들고 싶은 한 여성의 비밀과 로맨스를 담고 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기획된 작품이다. 카밀라 안디니, 이파 이스판샤 부부 감독이 연출했다. 2022년의 APM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가스퍼의 24시간>은 SF 장르의 영화다. 요셉 앙기 노엔 감독은 2032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대량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인신매매 집단과 대결하는 탐정 가스퍼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범죄 영화로, 노엔 감독은 <홀인원을 본 적 없는 캐디>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한 바 있다. 로테르담 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임페티고어>는 종교적 소재의 호러 영화다. 스토커의 공격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은 고향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저주를 풀기 위해 그를 제물로 삼으려 한다. 고수위의 강렬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

<바다가 나를 부른다>

<리마 거리의 바니아 >

<시가렛 걸 >

<춤추는 컬러 >

‘인도네시아 영화의 르네상스’에서 만날 수 있는 다섯 편의 단편도 주목할 만하다. 코지 리잘 감독의 <바스리와 살마의 네버엔딩스토리>는 올해 칸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에로틱한 느낌의 코미디다. 놀이 기구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부부 바스리와 살마에게 아이가 없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툼팔 탐푸볼론의 <바다가 나를 부른다>는 5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고아이지만 혹시나 아버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소년은 매일 바닷가에 나가 기다린다. 이때 바닷물에 밀려온 섹스 돌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M. 레자 파흐리얀샤의 <춤추는 컬러>는 작년 로카르노 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아들을 정상인으로 만들겠다고 의식을 치르는 부모에 대한 블랙코미디이다. 니라타 바스 디왕카라의 <야생화가 꽃피는>은 동성애, 종교, 범죄가 뒤엉킨 독특한 단편으로, 힌두교 집단 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