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를 하는 ‘구’민지가 고운 목소리로 강인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노래를 부른다. 피아노를 치며 곡을 이끌던 ‘이’채현은 나직하게 경기소리를 내뱉으며 뭉근한 질감을 더한다. ‘임’정완은 가야금을 뜯고 문지르고 두드리며 자신만의 선율을 만들어내는데, 이토록 다채로운 세 사람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질 때 ‘구이임’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탄생한다. 음악 그룹 구이임은 형식과 규정에 갇히지 않은 채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며 나아간다. 매 순간 변화하고 새로워지기 위한 준비를 다한 후, 또다시 예측하지 못한 음악을 만들어내리라 다짐하며.

임정완 가죽 재킷 코스(COS), 안에 입은 터틀넥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민지 안에 입은 블랙 드레스 코스 (COS), 레이어드한 큐빅 장식의 슬림 드레스 앤아더스토리즈 (& Other Stories), 이어링 스와로브스키 (Swarovski). 이채현 재킷과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가, 피아노와 경기소리, 가야금이라는 조합이 매력적입니다. 각자 구이임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구민지 정가를 부르며 구이임의 메인 보컬을 맡고 있어요. 정가는 한국 전통 성악의 한 갈래인데, 절제미를 추구하며 느리고 긴 호흡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에요. 저는 몸의 움직임을 추가하거나 더 과감히 부르는 등 새로운 표현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이채현 저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미디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구이임의 음악에 여러 색을 더하고 있어요. 서브 보컬로 경기소리(서울-경기 지방에서 부르던 민요)도 하고요.

임정완 전 가야금을 연주해요. 가장 기본적인 12현 가야금도 다루지만, 주로 25현의 개량 가야금을 사용해요. 보통 가야금은 손으로 뜯어 소리를 내는데, 아쟁 활이나 해금 말총 같은 활로 현을 문질러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세 분이 중·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구이임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구민지 제가 스카우트했어요.(웃음) 고등학생 시절 학교가 끝난 후 연습실에서 두 친구가 잼을 하듯 즉흥 음악을 연주하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정가는 형식이 갖춰진 갈래라 즉흥적인 것에 취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얘네 봐라, 내가 못하는 걸 잘하네?’(웃음)라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해야겠다 싶었죠.

 

흔쾌히 승낙했나요?

이채현 네. 민지가 워낙 잘하니까요.

 

“주체가 되어 각자의 음악을 제시하고 이를 타협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라는 말이 팀 소개에 적혀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요?

구민지 곡마다 다른데, 보통 한 사람이 영감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들고 와요. 본인의 의도를 전달하고 원하는 분위기를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죠. 이후엔 각자 알아서 음악을 만들어 와요. 그러고는 서로 자신이 맞다고 싸우기 시작하는 거죠.(웃음)

임정완 사실 한 명이 작곡하는 것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해야 모두의 색깔이 녹아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팀워크가 좋아 보여요.

이채현 종종 국악 하는 다른 팀을 보면 팀명은 똑같은데 멤버가 교체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절대 그 누구도 교체될 수 없습니다.(웃음)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채현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음악을 하기 때문이에요. 민지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정가를 부르는 사람도, 저처럼 경기소리를 하고 피아노를 치면서 병창(악기와 창을 함께 연주하는 형태)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정완이만큼 자신만의 특별한 색깔을 가진 가야금 연주자도 없고요. 모든 팀원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더욱 특별하지 않나 싶습니다.

구민지 대체 불가능 맞지.(웃음)

 

재킷과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드레스 코스(COS), 레이어드한 큐빅 장식 슬림 드레스 앤아더스토리즈 (& Other Stories), 슈즈 세르지오 로시(Sergio Rossi), 이어링 스와로브스키(Swarovski)

가죽 재킷과 팬츠 코스(COS), 터틀넥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이임이 음악 안에서 공통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임정완 구이임이라는 팀명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찾을 수 있어요. 특정한 단어로 이름을 지으면 그 의미에 따라 음악의 색이 국한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단순하게 3명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지었어요. 장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채로운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이채현 구이임을 ‘국악 그룹’이 아니라 ‘음악 그룹’이라 칭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국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음악이 특별하길 바라거든요.

 

국악기를 사용하는 것 말고도 국악의 문화적 요소나 정서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거라 짐작했어요.

구민지 맞아요. 정가라는 장르는 시조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은유법을 많이 써왔는데, 저도 비슷하게 표현하려고 해요. 제 가사를 보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도 있는데, 사실 정가 고유의 매력을 살리려고 노력한 지점이에요. 또 발음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을 정가의 한계로 들기도 하는데, 저는 그 또한 매력이라 생각해서 명확히 들리지 않도록 음악을 만들기도 해요.

이채현 의도하진 않았지만, 작곡 방식도 국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어요. 선조들은 대체로 다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요. 한 사람이 선율을 연주하면 “그거 좋다. 그럼 나는 이렇게 붙여볼게” 하면서요. 또 시간이 지나거나 구전되면서 음악이 변하기도 하잖아요. 우리도 비슷해요. 기본적으로 음악을 함께 만들고, 앨범을 내기 전까지 끊임없이 수정해요. 발매 이후에도 새롭게 편곡한 것이 더 좋다면 그렇게 연주하고요. 하나의 형태로 멈춰 있기보단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도 국악에서 영향을 받은 지점이자 구이임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부터 국악 안에 몸담아온 세 사람이 여전히 국악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임정완 가야금이 있기에 제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음색 자체도 좋을뿐더러 연주법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도 좋아요. 악기를 통해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연주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이 드러나기 마련이거든요.

구민지 저는 표현하기 조금 어려운데요, 곡이 빠르든 느리든 신나든 슬프든 가슴을 방방 뛰게 하는 게 있는 듯해요. 일종의 끈적함이랄까요.(웃음)

 

어디서 발현되는 끈적함일까요?

이채현 호흡과 음색인 것같아요. 국악 관련 심사를 할 때 꼭 들어가는 요소 중 하나가 공력이에요. 국악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게 애쓰며 갈고닦아야만 나오는 음색이 있는데, 그걸 공력이라고 해요. 내뱉기만 해도 짙게 나오는 힘 같은 것이요.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한 분이 방송에서 내레이션 할 때,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말인데 엄청난 감동을 줄 때가 있잖아요. 이와 비슷한 것을 국악 안에서 자주 발견해요.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채현 정말 많아요. 악기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연주법을 활용해 변화를 줘왔으니, 악기 구성을 한 번쯤 바꿔보고 싶기도 해요. 세 사람의 존재 빼고는 다 바꿔보는 거죠. 예를 들면 민지의 목소리로 반주를 만들고, 가야금으로 선율을 연주해보는 거예요. 제가 미디로 그런 음악을 만들어보는 거죠.

임정완 무대에서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보고 싶기도 해요. 공중에서 가야금 연주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관객들이 좌석이 아닌 무대에 앉아서 음악을 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구민지 관객들이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관음적인 시선으로 무대를 보는 장치도 시도하고 싶어요. 그런 의도로 만든 미술 작품들이 있더라고요. 무대를 구성하고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 단순히 예쁘고 멋진 것을 만든다기보다는 가사의 의미와 조응하는 요소를 활용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죠.

 

순식간에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네요.(웃음) 구이임이 꾸준히 새로운 음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채현 계속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있길 바라요. 앎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할 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구민지 방금 채현이가 말한 지점이 곧 발매될 신곡 ‘흰’의 가사에 담긴 것 같아요. 경험이나 편견을 배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라봤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잖아요. 때에 따라 마음과 시선의 각도를 달리해 우리의 것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렇게 매 순간 새로워지면서 나아가고 싶고요.

 

이채현 재킷과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민지 안에 입은 블랙 드레스 코스 (COS), 레이어드한 큐빅 장식의 슬림 드레스 앤아더스토리즈 (& Other Stories), 이어링 스와로브스키 (Swarovski). 임정완 가죽 재킷 코스(COS), 안에 입은 터틀넥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