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수
Jung Jin Soo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시각 매체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감독.
혁오를 비롯한 밴드부터 R&B, K-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visuals)을 만드는 곳(from)을 뜻하는
프로덕션 ‘공오’ 소속 스튜디오 ‘비주얼스프롬(Visualsfrom)’을 운영한다.

 

혁오 – ‘공드리’ MV 제작 현장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

 

홍대 앞 공연장에서 인디 밴드에 먼저 다가가 뮤직비디오 제작을 제안했다는 일화가 인상적이다. 뮤직비디오 제작을 처음 시작한 그때를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영상 작업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간 1백여 편의 영상을 제작했다. 그럼에도 아직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기록된 흔적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당시에 하나의 장르를 선택해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장르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이 내 작업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비주얼스프롬이 제작한 뮤직비디오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장르적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장르를 오가며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꼭 지키고자 한 비주얼스프롬만의 색깔은 무엇이었나? 내가 가진 취향이나 시선에서 오는 교집합이 있다고 본다. 클라이언트의 음악적 성격이 다양한 만큼 그에 걸맞게 팔색조 같은 매력을 뽐내려고 노력했지만(웃음), 역시 근본을 숨길 수는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초반 작업인 혁오의 ‘공드리’와 지코의 ‘오만과 편견’ 때부터 주로 어떤 ‘이미지’만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라고 들었다. 결과물을 즉각 연상시키는 레퍼런스는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없는 한계를 만들기도 하기에,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작업을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때문에 그저 복제를 위한 영상보다는 영화나 책, 사진 등을 동원해 누구나 보면서 어떤 ‘느낌’을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에서 출발하고자 했고, 이런 작업 방식은 요즘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종종 계획한 연출료를 넘길 만큼 그림에 욕심을 낸다던 인터뷰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장면의 미학적인 면을 구성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 물론 상업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로서 사업적 면모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한 미덕인데, 이걸 자주 잊고 살아 팀원들에게 고충을 안긴 적도 많다. 지금은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도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팝 그룹 타히티 80의 ‘UFO’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비주얼스프롬의 비디오그래피에서 중견 팝 밴드의 이름을 발견하니 새로웠다. 곡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밴드라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 있다. 타히티 80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도 괜찮다”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미션을 던져줬다.(웃음)

‘UFO’ 뮤직비디오의 테마가 된 이미지나 단어는 무엇이었나? 노래 제목에서 연상되는 분명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풍경과 사건을 담으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곁에 흔하게 있는 소재 중 비행선에 빗댈 수 있는 자동차라는 오브제를 선택해 한밤에 드라이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요즘은 어떤 작업에 몰두하고 있나? 새로운 비디오 소품을 개인적으로 만들어보는 중이다. 마치 명상하는 것처럼 마음을 비울 시간을 만들어주는 영상에 대해 고민하다 비주얼스프롬 팀원들과 함께 ‘Things’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이 작업에서는 인물 자체보다도 인물의 시선을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스쳐가는 단상을 담기에 상업 작업은 호흡이 빨라 늘 아쉬움이 남는데, 이런 작업이 환기할 기회가 돼준다. 최근에는 미국 공영방송 NPR에서 제작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한국 라이선스 버전인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시리즈를 비주얼스프롬 소속 김혜원 감독과 함께 연출하고 있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시리즈를 통해 라이브 영상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과제가 있었나? 실제 사무실 책상을 앞에 두고 소규모로 라이브 공연을 담아내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친밀하고 투박한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한국 시리즈만의 매력이 느껴질 수 있도록 여러 각도에서 고민했다. 조금 더 공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도서관을 실제로 지은 뒤 촬영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7대의 카메라를 활용해 라이브의 생동감을 포착하는 과정이 나름의 과제였다.

최근 <D.P.> 시리즈 외에도 <약한영웅 Class 1> <미씽: 그들이 있었다 2> 등 드라마의 오프닝 타이틀을 제작했다.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시퀀스를 제작하는 일은 뮤직비디오 제작과 어떤 점에서 달랐나? 바탕이 되는 노래나 가사가 없고 작품만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인 듯하다. 드라마의 요소를 영상에 얼마나 가져올 것인지도 고려해야 하고. 오프닝 타이틀은 뮤직비디오에 비해 다양한 분야의 영상 콘텐츠와 미술 작품도 직접적인 레퍼런스로 제시하는 편이다. <약한영웅 Class 1>의 오프닝 타이틀은 노순택 작가의 사진을 레퍼런스 삼아 시작한 작업이었다.

문득 당신이 사랑하는 영상 제작자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꼭 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면 항상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생각한다. <죠스>나 <더 포스트> 같은 스릴러 장르부터 <쉰들러 리스트> 같은 대작 역사물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 사람의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다. 말도 되지 않지만 그와 같은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나가고 싶나? 영상 매체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면 영화가 되고, 갤러리에서 전시하면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느 한 방면에 치우치거나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또한 스튜디오의 오리지널 작업을 계획 중이고, 기회가 된다면 영화처럼 더 긴 호흡으로 영상 작업의 반경을 넓히고 싶은 마음도 있다.